성소수자 부모모임 스물여덟 번째 정기모임 대화록
일시: 2016년 7월 9일 토요일 4시
장소: 서울 마포구
참석:
- 들꽃: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라라: 트랜스젠더 딸을 둔 어머니
- 지월: 트렌스젠더 자녀를 둔 어머니
- 뽀미: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 샤넬: 게이(가족이 전혀 모름)
- 바람: 게이(부모님과 형이 알고 있음)
- 어나더: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오소리: 양성애자(누나만 알고 있음)
- 채린: 레즈비언(부모님이 알고 있음)
- 스톤: 게이
- 용용: 게이(어머니만 알고 있음)
- 사과: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예준: 게이(부모님과 동생이 알고 있음)
- 지미짱: 게이 아들을 둔 아버지 (예준 아빠)
- 예준 엄마: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사과 엄마: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건강: 레즈비언
- 다래: 레즈비언 (엄마가 알고 있음)
- 국화 향기: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다래 엄마)
- 들꽃: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상근: 게이 (가족이 알고 있음)
- 별레주: 성소수자 (엄마가 알고 있음)
- 감사의 자녀: 트랜스젠더 (엄마가 알고 있음)
- 감사: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어머니
- 모1: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부1과 부부)
- 부1: 게이 아들을 둔 아버지 (모1과 부부)
- 인정: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최예림: 레즈비언 (오빠가 트랜스젠더)
- 몽이: 게이 (가족이 모름)
- 판다: 게이 (가족이 알고 있음)
- 문양: 게이 (가족이 알고 있음)
- 김마담: 성소수자 (가족이 알고 있음)
- 약수: 게이 (부모가 알고 있음)
- 람보: 게이 (부모가 알고 있음)
- 씨엘: 이성애자
- 김민정: MTF 트랜스젠더
- 헤락: 레즈비언
- 쑤: 양성애자
- 헤이든: 성소수자 (가족이 알고 있음)
- 씨레: 양성애자
- 케이: 퀘스쳐너리
- 골드: 레즈비언 (엄마가 알고 있음)
- 풀: (엄마가 알고 있음)
사회: 어나더
속기: 스톤
어나더: 저는 어나더입니다. 나이는 22살고요. 부모님께 커밍아웃 했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지인: 저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지인이고요. 게이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아들의 정체성은 삼년 전에 알게 되었고 지금은 스무살이에요. 지금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용용: 저는 행성인 청소년팀 활동가 용용이라고 합니다. 게이고요. 부모님께는 2년 전에 커밍아웃 했어요. 잘 안먹혀서 최근에 다시 했는데, 부모모임 팜플렛 같은 것도 이용했습니다. 원래 어머니가 되게 거부 하시다가 부모모임에 나오는걸 한번 생각은 해보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잘되었음 좋겠습니다. 19살 입니다.
지미짱: 전 예준이 아빠입니다.
예준 엄마: 저는 아들이 한 달전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사실 일주일간 좀 힘들어 하다가 그냥 저는 아들이 행복한 쪽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아들은 살면서 저를 힘들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다시 제가 힘들어지는 시기구나 싶어서 잘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지난 달 모임엔 못 왔는데 저희 남편이 되게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을 빼서 왔고 앞으로 우리 예준이가 행복하게 차별없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과 엄마: 안우려고 안우려고 했는데 옆에서 우시니까 눈물이 나네요. 저는 우선 너무 고마워요. 이 모임이 있다는 게, 저는 아들의 정체성을 오래전에 알았어요. 아들이 이제 대학교 1학년인데 고1때 알았거든요. 우리 아이가 워낙 소탈 소박해요. 저는 아직 여러 가지 선택의 여지나 바뀔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건 저의 성향인 것 같아요. 자식이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가정을 가졌으면 졸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짝이 동성이 되어도 아이는 입양하면 되겠죠. 우리가 익숙한 가정의 형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정을 못 가질 건 없죠.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거 같고, 삶은 다양해서 좋은 거잖아요. 아이가 언제나 부모 마음 같을수는 없으니까요. 행성인이 없었다면 아이가 견디기 힘들었을거에요. 가장 무서운 병은 외로움이잖아요, 행성인 덕분에 아이가 덜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감사해요. 자기는 엄마가 여기 나와줬으면 했나봐요. 여기 나오는 걸 아이는 원했는데, 제가 워낙 무섭게 해서 말을 꺼내지 못한 것 같아요.
건강: 저는 건강이라 하고요. 24살이고 레즈비언이고. 한 번 어떤 모임인지 궁금해서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국화 향기: 모녀 관계이고. 저도 처음 왔는데. 애가 여기 오자고 두 달 전에 말을 했는데, 정말 속으로 거부를 많이 했어요. 그래도 내 딸이니까 오게 된 거 같아요.
다래: 안녕하세요 저는 다래고요. 20살 레즈비언이에요. 엄마한텐 두 달 전쯤 커밍아웃하고 같이 오자고 했는데 별로 그러고 싶어하지 않으셨어요.
들꽃: 저는 게이 아들을 둔 엄마고 알게 된 건 8년 전 입니다. 8년 전에는 이런 모임이 전혀 없었고 어떤 정보도 없었어요. 2, 3년 간은 정말 저 혼자 힘들어하고 고심을 했고요. 그러다 우울증 같은 게 있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이 모임에 나왔거든요. 근데 그 속에 있는 힘든 게 완전히 다 치유가 되었어요. 성소수자나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그런 상황들을 저도 거쳤거든요. 분명히 나같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거란 생각에 많은 분들과 지금까지 이렇게 모임을 하고 있고요. 아들은 5년 전에 정말로 좋은 파트너를 만났어요. 파트너가 형인데 제가 큰아들이라고 불러요. 지금까지 정말 잘 살고 있어요. 정말 큰 아들이 너무 고맙고 이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아들도 편안한게 잘 지내고 직장 생활 잘하고 있습니다.
상근: 저는 행성인 회원이고 상근이라고 합니다. 가족들한테는 9년전에 커밍아웃을 했어요. 여전히 엄마랑 대립중입니다. 엄마는 여전히 혐오세력이 뿌리는 찌라시나 그런걸 모아서 문자를 보내고 그러세요. 내년이면 이제 10년차인데 저는 이제 해외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어서 포기를 할까 했어요. 그런데 예전부터 알고 있던 부모모임이 생각나서 과연 우리 엄마가 여기에 오면 달라질까하고, 일단 오기나 할지 모르겠지만 저도 안와봤기 때문에 일단 부모모임에서 어떤 얘기를 하나 들어보기 위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별레주: 저는 큐캔디 활동을 하고 있고 대구퀴퍼 공연때 엄마를 초청해서 앞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 이후로 엄마랑 대판 싸웠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감사의 자녀: 24살이고요.. 처음인데, 이거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자 왔어요.
감사: 저는 얘 엄마고요. 이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안 지는 한 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좀 여성성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알아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과 같은 걸 가져도 여전히 고민이 있거든요. 그래서 삶이라는건 계속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인데. 단지 조금 남들과 다른 고민을 가졌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방법을 찾고자 여기 왔습니다.
모1 : 저는 처음 나왔고요. 한 달전에 아들이 게이라고 얘기를 해줬는데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이가 너무나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듣고 속 한 번 안썩이고 착한 아이였어요. 지 딴에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그랬기 때문에 더 잘해야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기는 괜찮으니까 엄마 아빠만 안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남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저도 남들이 했던 걸 다 그대로 했던 것 같아요. 엄마들의 반응 단계를 제가 그 자리에서 10분 안에 다 했더라고요. 다른 부모님들이랑 똑같이. 바로 엄마가 너무 몰라서 그랬으니까 너만 괜찮으면 된다고는 했는데 . 우리 둘이 괜찮지 않은거에요. 누나한테 엄마는 영원히 괜찮지 않을거라고 했어요. 한달동안 괜찮다가 안 괜찮다가 계속 그래요. 그런 정보들을 보고 있는 상태긴 한데 아빠랑 첫 번째로 가장 큰 생각은 바뀌지 않을까에요, 혹시라도 누구 바뀐 사람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어쨌든 여전히 힘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남들은 다 괜찮은데 왜 나만 힘들까 이런 생각도 들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93년생입니다.
부1 : 같이 온 남편입니다. 저는 성소수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 그런 걸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인정: 저는 인정이고요. 지금 중학교 2학년 게이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몇 달 전에 알게 되었는데. 저는 아들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지지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저 좀 도와달라고 왔어요. 지금 아들이 친구 몇명한테 얘기를 했고. 어쩌다 학부모들도 알게 되었어요. 엄마들이 이제 저를 따돌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어요. 그런 걸 도움을 청하고 싶고요. 그리고 알게 되신 부모님이 힘센 학생회장 부모님이세요. 그래서 선생님들한테 그런 얘기를 해서 아이한테 상처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엄마는 니 편이야 하고 손잡고 위로했는데. 제 마음도 편해야 하잖아요. 엄마가 굳건해야 하니까. 그래서 저 좀 도와달라고 도움 청하러 왔습니다.
뽀미: 저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뽀미라고 합니다.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고요. 앞에 있는 애가 제 딸이에요.
최예림: 저는 최예림이에요. 두 번째 왔고요. 저는 미국에 사는 레즈비언이고 친오빠는 트렌스젠더에요. 이번 말에 오빠가 한국으로 성별 정정하러 오는데요. 8월달에는 같이 데리고 올거에요.
채린: 저는 레즈비언이고 뽀미님 딸이고요. 문이채린이라고 합니다. 현재 부모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몽이: 저는 부모모임에서 막 일하게 된 21살 몽이라고 합니다. 저는 게이에요.
예준: 저는 예준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게이이고 뒤에 엄마 아빠 데리고 왔습니다.
신다애: 저는 오월부터 계속 나오고 있는 신다애라고 합니다.
판다: 저는 재연 아님 판다라고 하고요. 저는 게이고 나이는 21살이고 가족이랑 친구랑 다 커밍아웃을 한 상태입니다.
문양: 저는 22살 게이 문양이라고 합니다. 부모님들한텐 아웃팅 당한 상태입니다.
사과: 저는 청소년팀 활동하고 있는 사과라고 합니다. 오늘 어머니를 데리고 왔어요. 오니까 좋네요. 아빠는 좀 미적지근해요. 엄마는 여기까지 오고 관심을 보여주는데. 아빠는 여기를 홍석천 모임이라고 부르지 않나.
김마담: 저는 1년 전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최근에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을 보고 엄마가 감동을 받으셔서 굉장히 여길 참석하고 싶었어요.
약수: 저는 25살 게이고 최근에 부모님이 알게 되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람보: 저는 27살 람보라고 하고 20살때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했고요. 부모님이 이해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부모모임 알려주셔서 4월부터 나오게 되었고. 앞으로 모임 활동 하면서 많은 이야기 듣고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싶습니다.
씨엘: 저는 씨엘이라고 합니다. 이성애자긴한데 나중에 성적 지향이 바뀌게 되면 엄마 아빠랑 같이 오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김민정: 안녕하세요 저는 19살이고 mtf 트렌스 젠더입니다.
헤락: 안녕하세요 전 36살 레즈비언 헤락입니다. 어머니한테 커밍아웃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는데. 여기에 오면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쑤: 안녕하세요 저는 쑤라고 합니다. 저는 바이섹슈얼이고. 유튜브 방송하고 있습니다.
헤이든: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온 헤이든이라고 하고요. 3년 전에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도망치듯이 한국으로 왔어요. 얼마전에 처음 들어봐서 오게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의 관점에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씨레: 저는 씨레라고 하고요. 저는 바이라고 하는 건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가장 가까운거 같고요. 어릴 떄부터 독립적으로 살아서 부모님한테 얘기를 안할거라고 평생. 그렇게 생각했는데. 행성인 회원이라서 알고 있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라라: 안녕하세요 저는 mtf 트렌스젠더 딸을 둔 부모모임 활동가 라라 라고 합니다. 저희 아이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는 그래 뭐 결혼 안하고 살면 어때. 애인이랑 평생 행복하게 살면 되지.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근데 지난번 모임때 오신 굉장히 많은 분들 중에 미국에서 온 레즈비언 부부가 있었고, 그래서 그 부부가 정자기증을 받아서 출산한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왔어요. 그래서 제가 ‘그래 우리 아이들도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기르며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내가 왜 그 권리를 포기했지?’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서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모임 너무 좋습니다.
케이: 안녕하세요. 저는 25살 일본에서 온 케이라고 합니다. 시스젠더 퀘스쳐너리입니다.
샤넬: 저는 25살 샤넬이라고 합니다. 저는 정체성은 게이고. 아직 커밍아웃은 안했지만 불교를 믿고 어머니는 기독교이신데 그런데도 서로 인정을 하고 있으니까 정체성 부분도 잘 될거라 생각합니다.
골드: 저는 23살 레즈비언이고 엄마한테 한 4년 전에 말씀을 드렸는데 받아들이지 못하시고 가족 전체한테 아웃팅 되어서 상황이 되게 힘들었어요. 아직까지 그런 상태고 여기 와서 부모님들 얘기도 들어보면서 이해를 해보려고 해요.
풀: 25살 풀이고요. 커밍아웃을 안했는데 최근에 엄마가 알게 되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트러블이 있어서 이런 자리에 나와봤습니다.
오소리: 저는 행성인 상근 활동가인 오소리라고 합니다. 저는 누나한테만 커밍아웃 했고 바이입니다.
바람: 안녕하세요 저는 바람이고 22살입니다. 엄마한테 커밍아웃 했고. 형한테 아웃팅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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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먼저 알고 계신 부모님이나 본인들이 혹시 생각이 바뀐다든가 마음이 이렇게 왔다갔다 한다던가 하는 경우가 비슷하게라도 없나요.
들꽃: 저도 지금 어머님처럼 , 그 당시 처음 알았을 때 그 생각을 매일 했어요. 정말 1프로에 얘가 바뀌진 않을까 그 지푸라기를 잡고 싶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아이한테도 굉장히 해롭고, 나 자신한테도 해롭더라고요. 그렇게 23년을 허비했거든요. 많이 후회가 되기도 해요. 누군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정체성은 잘 바뀌지 않거든요. 어떻게 그것을 바꿔볼 수 없을까 하는 그 미련이, 제가 인터뷰에서 말을 했었는데 1프로의 지푸라기를 잡으려던 그 시간 동안 내가 미련한 짓을 했다고 했거든요. 어느 부모님이나 그런 단계나 시간이 필요하긴 해요. 정체성이 바뀔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 근데 바뀌진 않거든요. 지금은 마음이 아프겠지만 자녀를 위해서 안 바뀌는 것으로 생각하세요. 지금은 그렇게 밖에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어요.
지인: 저는 일년을 울면서 그렇게 보냈었어요. 그러다 수많은 자료를 다 찾아봤었어요. 우리 이성애자를 어떻게 한다고 해서 갑자기 동성애자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전환치료나 그런건데. 어떤 화면을 보여주면서 전기충격이나 약물을 투여했는데. 근데 그게 효과도 하나 없었고 오히려 부작용만 심했어요. 그래서 미국 심리학자들도 성소수자들한테 다 사과를 했고.
부모가 계속 너 바뀔 수 있어 라고 압력을 가하면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성애자랑 결혼을 하게 되고, 배우자랑 불행하게 사는거에요. 그렇게 사는거에요 . 부모가 계속 그렇게 표현을 하면. 한국의 성소수자 자살 시도율이 굉장히 높아요. 근데 외국 논문도 그런데, 부모가 거부할 떄 자녀의 자살율이 8배 높아진다고 해요. 몇달 전에도 누가 자살을 했었고, 페이스북에서도 보고 그랬는데. 지금 애가 동성애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이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알았던 거에요. 우리가 늦게 안거고. 그 오랜 세월을 혼자서 힘들어하고 나는 다르지 고민을 했었던 애들이 부모가 알고난 다음부터 상처를 주고 그러면 고통을 받는거에요.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그런 경험도 있을 수 있는데,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 할 역할은 아닌 거 같아요.
이성애자 중에 동성이랑 성관계 시도율이 20~30%가 된대요. 근데 그런다고 정체성이 동성애자인 것은 아니거든요. 이것만 기억하시면 될 거 같아요. 끌림은 부모가 어떻게 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들꽃: 제 아들이 5년 째 파트너하고 사는데요. 정말 행복해해요. 정말 우리 아들이 표정이, 파트너를 만나기 전까지의 표정은 정말 불행했어요. 지금 그 아이는 정말 행복하다고 그래요. 어느 날 전화해서 엄마 나 행복해 이러더라고요. 동성애자가 무조건 불행한 게 아니에요. 이성애자들도 시부모랑 엮이고 자식 교육비 때문에 코피 터지고 힘들잖아요. 근데 우리 아들은 둘이서만 행복하게 살면 되니까. 좋은 점도 굉장히 많아요. 정말로 전 편안해요. 그게 금방은 안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님들 얘기라던가 자녀분들 얘기 들어보면 빨리 이해가 될 거에요.
라라: 어떤 어머님이 아이 정체성을 알고 정신과에 상담가를 찾아갔대요. 그래서 변하는 거 본 적있냐, 치료한 적 있냐 라고 물었는데 의사가 말하길 전 여태까지 한 번도 변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바뀔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머니가 알아보셔도 대답은 똑같을 거에요.
뽀미: 17살 때 딸이 커밍아웃을 했어요. 제가 알기로는 17살에 본인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본인이 확실히 나는 레즈비언인가를 파악하고 다시 고민하고 시도해보고 정말인가 의심하고 했던 시간이 꽤 길었다고 해요. 너 남자친구 사귀어봤니. 키스해봤니. 섹스해봤니. 어땠는데. 라고 물어봤어요 혹시라도 얘가 제대로 된 남자친구를 만나지 못했을까봐. 얘가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다른 걸 깨닫지 않을까 하고 다른 사람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계속 말해보고. 어머니의 그 심정은 안없어질 거에요. 아마 제 생각에 아드님은 10대 떄부터 고민을 하고 스스로 이제서 커밍아웃을 했던 거 같아요. 한달 전에 깨달은 게 아니라. 근데 그 한 달 두 달 전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문장은 죽어라고 안없어져요. 뭘 해도 설거지를 해도 뭘 봐도. 근데 저 같은 경우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낯설었어요. 엄마 나는 여자가 좋아 라고 한 것은 문장이니까 받아들이기 쉬웠는데. 여기에 와서 나는 레즈비언을 둔 딸입니다 라고 내 목소리로 말하고 듣고 하니까, 그게 낯설지 않게 되었어요. 그게 작년부터니까 그게 몇년인거에요. 몇년간 저를 괴롭혔던 거죠. 걔를 인정하니까 스스로도 인정이 되더라고요. 좀 더 멋진 사람을 만나면 어떨까라는 질문 있죠. 근데 딸이 하는 말이,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쫙 앉아 있는데 여자들 밖에 안 보이는거야. 두근거리고 어쩔 줄 모르겠는 거야. 근데 그렇게 얘기를 듣는 순간 아이씨 안되겠구나 싶었어요. 저 24년간 남편이랑 살은 이성애자인데, 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요. 남자와 사귀어보고 섹스도 해봤대요. 근데 안된다는 걸 어떡해. 누군가에게 꽃히는 건, 인연은 어쩔 수 없어요.
모1: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서 니가 그럴리가 없다. 내가 너랑 살면서 한 번도 못 느꼈는데 니가 그럴 리 없다. 라고 했더니 애가 하는 말이 엄마가 아빠 좋아하듯이, 엄마가 남자 좋아하듯이, 자기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 좋아한다고 생각하라고 하더라고요. 하나하나 짚어보니까 조금씩 다른 면이 계속 있었던 거 같아요. 자기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고, 예를 들어 이모가 기독교인이니까 잠잘 때 원하는 게 있으면 기도하라고 했대요. 그래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뀌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대요. 아이는 그 세월을 혼자 보낸 거예요. 지금 유학 가있는데 엄마 아빠가 힘들게 보내줬으니까 자기가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 힘든 것 까지 있으니까. 자기가 열심히 살았는데 이 부분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같이 살면 너 괜찮아, 엄마 아빠는 강심장이니까 괜찮아. 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같이 살지 않으니까. 그리고 커밍아웃을 하려는 계획도 세워뒀었더라고요. 지금 아니면 평생 얘기 안하고 살려고. 그리고 커밍아웃할 때 엄마 나 남자를 좋아해. 라고 편하게 얘기하지 않고 지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엄마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라고 하는거에요. 근데 그 얘기를 하는데 얘가 왜 이렇게 뜸을 들이지? 백인인가 흑인인가 이런 생각만 하고. 어 누군데? 왜 말을 못해? 물어보니까. 남자야. 이러더라고요. 나는 이제 그게 뭐라 해야할까요. 이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고 농담이고 장난일거고. 지 딴에는 좀 더 잘 넘어가려고 오랜 생각 끝에 그렇게 얘기했다곤 하는데. 그래서 제가 아빠한테는 엄마가 말하마. 너처럼 말하면 더 힘들다 라고 하고. 아빠한테는 우리 아들이 다른 애들과 다르다고 했더니. 아빠가 애가 병 걸렸는 줄 알았나봐요.
부1: 울면서 말하니까 애가 죽나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모1: 근데 얘기를 하니까 안도를 하셨대요. 아 죽는 건 아니구나. 아들한테 굉장히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요. 아빠가 더 옛날 사람 같은 타입이라 더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더 잘 넘어갔죠. 근데 앞에선 발전적인 얘기를 하고 행복하게 살면 될 거야 라곤 하는데 혼자 있으면 또 다시 생각이 나고.
뽀미: 괜찮아지실 거예요. 저도 괜찮아지는데 5, 6년 걸렸어요. 근데 질문 하나를 하고 싶어요. 저는 부모님 이야기 말고 당사자 분들이 내가 얼마나 시도했는데 바뀌지 않는 지를.
예림: 저는 술을 엄청 마시고 클럽에 가서 관계를 가지면 혹시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없어요. 여자 애들은 술 없어도 느껴지는데. 남자는 술을 마셔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용용: 저는 주위 친구들이 너는 하늘이 내린 게이라고 하는데요. 너는 정말 여자랑 무인도에 갇혀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다. 이런 말을 해요. 저는 처음에 연애를 했을 때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볼 장 다 봤는데, 저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소녀시대 유행할 때 소녀시대를 배경화면으로 해놓고 감상하고 그랬는데 일반적인 남자애들은 설현이 나오고 그러면 와 대박이다 와! 이러잖아요. 근데 그 당시에도, 남자애들을 보면서 쟤네는 왜 저럴까 싶었어요. 이성애자 남성들은 이쁜 여자가 지나가면 막 뒤돌아보잖아요. 근데 저한텐 그냥 나랑 다르게 머리가 긴 생명체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커밍아웃을 할 때 엄마가 충격을 덜 받게 하려고 양성애자라고 했었어요. 그리고 양성애자라도 될 수 없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서. 친구들한테 여자 소개도 시켜달라고 하고. 그리고 여자를 만나서 스킨십을 하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결국에 내린 결론이 여성과 결혼을 해서 살 수 는 있겠지만, 살 수만 있을 거 같다는 거였어요.
골드: 저도 엄마한테 말을 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셔서. 엄마도 남자를 사귀어봐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남자인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레즈비언인걸 밝히고 사귀어 봤어요. 근데 정말 아무런 감정이 안 드는거에요. 그러다가 되게 잘생긴 애랑 사귀어봤는데, 자기가 결혼을 하면~ 이러면서 결혼을 상상하는 거예요. 근데 그 순간 저도 이 아이와 결혼하는 걸 상상하니까 너무 불행할 거 같았어요.
예준: 학생 때 커밍아웃하는 사람도 있고 성년 이후에 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근데 성인이 돼서 커밍아웃을 한 사람은 그 동안 자기혐오를 이겨내고 극복하고 이제 비로소 말씀 드리는 경우에요. 저도 제 개인적인 얘기를 풀면, 저는 이런 커뮤니티를 찾아올 생각도 못하고 혼자 많이 힘들었어요. 자위 행위를 하며 포르노를 볼 때도 게이포르노를 보면 되게 죄책감이 든단 말이에요. 근데 일반 포르노를 보고 그러면 그래도 나는 일반 포르노를 봤다고 위안하고 그랬어요. 게이 포르노 본 날은 증거를 다 치웠는데 일반 포르노 본 날에는 엄마 아빠한테 들켜도 될 거 같은 안심도 들고. 근데 내가 지지자라고 생각하신 부모님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내비친다면 다시 자기혐오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 너무 상처를 받을 거 같아요.
모1: 아들 앞에서는 엄청 괜찮은 것처럼 했어요.
뽀미: 정말 잘하셨어요.
지인: 저보다 훨씬 잘하셨어요.
모1: 어쨌든 , 많이 괜찮은 척 해서… 애가 굉장히 참고 그런 타입인데 애인을 보고 싶어서 펑펑 우는 거에요.
감사: 우리가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 존재만으로도 행복했잖아요. 아이가 두 달 뒤에 죽는다면 우리는 울어야겠죠. 하지만 이건 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운다는 건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거잖아요. 우린 잘못한 게 아니에요. 저는 전에는 이 정보도 아예 몰랐고 그랬는데, 이제 이해하게 되었어요. 아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알게 된 거잖아요. 말하자면 우리는 남자와 여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 종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우리가 새로운 걸 알았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아이가 혼자 힘들어 했을 시간에 슬펐지, 아이가 이렇기 때문에 슬프지는 않았어요. 우리는 감정에서 나와서, 사회가 방치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이가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살 수 있을 지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기 와서 말로만 듣던 걸 봐서 놀라긴 했지만, 슬프진 않았어요. 우리가 애를 키우다보면 애가 삐뚤어져서, 공부를 못해서, 이혼을 해서, 슬프기도 해요. 인생을 살다보면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잖아요. 이건 그냥 종류가 다른, 소수의 고민일 뿐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제 군대갈 나이가 되어서 너 군대 언제 갈래? 하고 계속 얘기를 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애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제가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픈거에요. 카투사는 언제 집어넣니. 언제 시험을 보니. 이 시점에서 그게 고민이에요. 군대를 아이가 가야 하는가. 어차피 바뀌지도 않는다면서요. 근데 아이가 군대를 안 가려면 수술을 하거나 주민번호를 바꿔야 한다더라고요. 그래서 수술비를 벌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위험성 있는 수술이다 보니 좋은 의사를 찾아야겠구나 싶었고. 또 이 아이를 이해해줄 수 있는 좋은 짝꿍을 찾도록 도와줘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이런 분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을 거다 싶어서 찾아봤어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있더라고요. 오늘 뽀미님 기사도 한겨레신문에서 봤어요. 그런 것들을 캡처해서 메일로 보내서, 자고 있는 애를 깨워서 데려왔어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지혜롭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싶어요. 지금 3학년인데 군대를 안가면 졸업을 하고 뭘 해야 할지 그런 생각도 들고. 남자교사로 살면 좀 더 유리한데 수술을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여자로 산다는 건 정말 안 좋거든요. 저는 남자가 되고 싶었던 순간이 정말 많았거든요. 근데 그러다가 당연히 내가 여자로 숨만 쉬고 존재하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참 감사해야 할 일이구나 싶었어요.
어나더: 어머니에게 제도적이나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 라라님이 소속해 계신 트렌스젠더 부모모임이 있어요. 거기서도 정보를 얻어보시고 저희를 통해서도 정보를 얻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나더: 저는 예준 아버님을 저번 모임에서 뵀는데, 어머님 얘기를 아예 들어보지 못했어요.
예준 엄마: 제가 아까 운건 게이라서 운 건 아니고. 아들이 지난 세월 힘들었을 그 시간이 너무 슬펐어요. 우리 아들이 좀 달랐어요. 되게 다정다감하고 섬세하고. 사실 엄마한텐 이런 아들이 정말 좋잖아요.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사이도 되게 좋고. 그동안 얼마나 얘가 힘들었을까 싶어서 한참을 울고. 사실 지금은 당당하게 얘기를 할 수는 있지만 아들이 게이라서 슬프진 않아요. 그냥 그때 감정이 너무 생각이 나고 그래서 울었어요.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애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이 아이가 겪어야 할 불편과 차별이 안쓰러운 거죠. 저는 이 모임을 예준이가 같이 가자고 했는데 제가 일을 하기 때문에 지난 달엔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이번 달은 오긴 했는데. 오긴 잘 온 거 같아요. 하지만 두려움은 좀 있었어요. 마음을 다 잡고 있었는데 그게 다 무너지면서 폭발할까봐. 예준이 앞에서는 한 번도 울거나 화를 내거나 한 적은 없어요. 아들이 또 글을 잘써서 그거에 감동을 받아서 울기도 하고. 우리는 아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저희끼리 약속을 한 거고. 다만 사회적으로 상처를 받을까봐 그게 두렵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방법을 알고 싶었어요.
어나더: 예준님이 커밍아웃을 하시기 전에 저희 부모모임에 먼저 접했는데. 다른 실무진 분이 밥도 사주시고 커밍아웃 모범사례라고 그러셨었어요.
사과 엄마: 참 오니까. 여기 모인 사람은 문제가 없는 거 같아요. 어디나 그렇잖아요. 양지 쪽에 있는 사람은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항상 자기를 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뭔가를 숨기고 있을 때 사람들 눈에 보이지도 않잖아요. 하물며 남자인데 남자를 좋아하는 게 얼마나 본인으로서 힘들겠어요. 공부가 참 중요할 것 같아요. 모이신 한 분 한 분들이. 우리가 이해를 하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가 행복하기를 바라잖아요. 우리 서로 행복하길 바라고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잖아요. 뭐 그런 거 가지고. 우리가 먹는 수박이 원래는 수박이 아니라 사실 그냥 박인데, 그냥 박안에 수박을 키우는 거에요. 그냥 순종 수박은 껍질이 약해서 상품성이 없어요. 수박 잘 크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체성마저도 생각의 문제인 거 같아요. 어떻게 찾아봐서 올 수 있는 방법을 노출시키는 그런 일들이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버님 말씀을 듣고 싶어요. 우리 남편은 정말 그 쪽에 꽉 막혀있거든요. 자꾸만 아니라고 우겨가면서, 안 궁금한 것도 아니면서 무뚝뚝하게 굴고. 그러면서 저한테 서울 어디 갔다 왔냐고 묻는 거예요. 아들은 저한테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지만 남편한텐 안하거든요. 그렇게 소통을 안 하다가 가끔 너 홍석천 모임 갔냐는 식으로 툴툴 대고. 그래서 아버님은 어떻게 하시나 궁금해요.
부1: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마음이 많이 놓여요.
모1: 어제 통화를 했는데 당연히 엄마만 모임에 나가는 줄 알고 아빠가 간다는 생각은 못했나봐요. 아빠도 가냐고 되게 놀랐는데. 저도 굳이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가고 싶진 않더라고요. 근데 남편은 당연히 같이 가려고 했었어요.
아들 얘기를 다시 하자면, 요새 애인을 만나는데 그런 점이 슬프대요.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숨기고 살았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부모님한테 계속 숨기고 살면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도 행복하면 안돼? 라고.
다래: 저는 2년 전부터 중국에서 유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저는 한 15살 쯤 레즈비언인걸 알게됐어요. 성소수자라는 개념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난 아닐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15살 때 자각하게 되니까 되게 당황스럽더라고요. 잠도 잘 못자고.
국화 향기: 막 새벽 4시에 자고 그랬어요.
어나더: 따님은 어떻게 커밍아웃 했나요?
국화 향기: 편지로요.
어나더: 어떤 내용이었나요?
국화 향기: 처음 읽고 안 읽었어요. 너무 충격적이였어서. 한 번 읽고 다음 읽기 전까지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해서.
예준 엄마: 근데 다시 읽으실거죠?
국화 향기: 네
예준 엄마: 그걸 계속 읽으면 이해가 가더라고요.
국화 향기: 여하튼 아이는 그렇게 고민할 동안 왜 너는 그렇게 잠을 안자냐, 왜 그렇게 지각하냐고 화내고. 그 때 과정들이 다시 생각이 나는 거에요. 얘가 왜 이랬었는지.
어나더: 지금은 어떠세요?
국화 향기: 저는 인정해요. 김조광수 강의도 찾아가서 듣고 정보도 찾아보고. 근데 그런다고 감정이 따라가진 않잖아요. 머리로는 다 이해를 하지만. 남편한테 말을 했어요. 토요일날 서울 간다고 다래랑. 근데 남편이 엄청 놀라는 거에요 임신했냐고. 큰 병 걸렸냐고. 나한테 말하라고 둘이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래서 말하니까 남편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남편도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이해는 하는데, 마음으론 아직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다래: 제가 15살 때 알았는데 엄마한테 커밍아웃 한 건 19살이잖아요. 4년간 정말 아니라고 아니라고 기도하고 그랬는데. 그러다 결국엔 레즈비언인건 알겠으니까 이 사실을 잊어버리게 해달라고. 뭘 하던지, 친구들이랑 밥 먹다가도 내가 레즈비언인걸 알면 친구들이 계속 이럴까 싶기도 하고, 근데 그게 안 되는거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냥 인정하고 마음 편하게 하려고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한테 버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좀 버리려고요.
국화 향기: 인터넷에 혐오적인 댓글들을 보면 너무 아파요. 그런 차별을 당할까봐 너무 두려운 거에요. 우리 아이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멋진 아이인데 차별을 받을까봐. 집안도 기독교 집안인데 나는 내 새끼라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이 비난 할까봐 그게 무섭고, 그래도 남편이 괜찮다고 받아들여줘서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저 혼자 알았을 때는 혼자 힘들었거든요.
어나더: 앞으로도 계속 남편분이랑 이야기를 꾸준히 할 생각이신가요?
국화 향기: 아직은 힘들거 같아요. 이 주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게. 다만 내 딸이니까 내 딸이 행복하길 바라고 계속 지원을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어요. 사회적 약자라면 능력이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웃팅을 당해도 그런 것들을 상쇄시킬 능력을 길렀으면 해요. 더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채린: 저도 커밍아웃을 17살 때 하고 지금 25살이니까 그 동안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어요. 제가 그 시절에 이렇게 될 거란건 꿈이였는데 지금은 활동도 같이 하고 언론에도 얼굴을 내비치고 있고. 생각보다 정말 너무나 존경스러운 사람이 엄마아빠가 되었어요. 이번에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가장 길게 내준 게 어제 한겨레신문에 실렸어요. 그 기사를 통해서 저희 친척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한 거에요. 외가 친가 쪽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다 호의적이셨어요. 열심히 기도하고 결혼식에도 올 거라고. 예전에는 제가 성적 지향을 깨달았을 때, 세상이 얼마나 비난하고 차별하는지 무서웠고 인터넷 댓글만 봐도 하루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그랬거든요. 근데 지금 제 뒤에 엄마가 든든히 있고. 이번에 한겨레신문에 악성 댓글이 많았는데, 전 오늘 박장대소를 했어요. 사실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서는 거였더라고요. 그런 댓글들은 그냥 돌아서면 그만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면 평생 상처가 남거든요. 친척 중에 정말 어린 아이들이 있는데, 만약 제가 결혼식을 하면 어~ 언니가 여자랑 결혼한대 이렇게 느낄거잖아요. 그런 아이들이 큰다면 다른 세상이 되겠죠. 저도 성장을 했지만 주변도 계속 성장을 하고 바뀌고 있고요. 빠르게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무서워 할 필요보단 주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면 더 없이 행복할 거에요. 부모님들이 저희를 버리지 않고, 존재만으로, 그곳 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행복해요.
(휴식)
상근: 저는 고등학교때부터 활동을 했어요. 저는 거의 제 주변 98%정도가 게이라는 걸 알고 있고 그래도 딱히 불편하거나 차별받는 일은 없었어요. 제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제 앞에서 대놓고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계획도 잘 짜 놓고 그래요. 그런 면에서 나름 잘 살고 있고요. 항상 걸리는 건 어머니에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버지는 모르시고 어머니만 제 성정체성을 알고 있는데, 어머니께 성소수자에 관한 자료들을 계속 보내드려도 호모포피아적인 기독교들이 퍼트린 악성 루머만 찾아서 읽고 저한테 보내고 그러세요.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나를 욕하는 건 상관 없는데, 부모님이 나에게 등을 돌리는 건 엄청난 아픔이란 거에요. 지금 갓 커밍아웃하고 같이 오신 분들도 많은데, 준비기간이 굉장히 길었을 거에요. 정말 오만가지 상상을 해요. 버리지 않을까, 정신병원에 가두지 않을까. 그리고 또 저는 모범적이지 않은, 충동적인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럼에도 한 가지 감사히 여기는 건 엄마와 누나들은 나를 버리진 않았다는 거.
부모님들은 그런 걸 돌아볼 여유가 없을 거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생길 거에요. 지지해주고 그저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식에게 힘이 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고 2때까지 게이나 레즈 친구 하나도 없었는데 그동안 정말 많이 망가졌어요. 꽉 막혀 살았고 겉으로는 모범생, 속으로는 정서적으로 뒤떨어진 사람으로 살았죠. 그러다가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면서 굉장히 많이 달라졌거든요. 결과적으로 군대 다녀오면서 나는 내 정체성 평생 숨기면서 살 수는 없는 사람이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거의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된다면 커밍아웃을 해요. 필요한 순간이 올 때마다 주저없이. 제가 사회에서 어떤 우위에 오르건 어떤 사람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내 자신으로써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거지. 살면서 그런걸 많이 깨닫게 됐어요.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들, 본인들이 훨씬 더 많이 하고 있을거에요. 일종의 미련이거든요. 내 자식이 이성애자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처럼요.
어나더: 어머니랑 좋은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런 사이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거나 해결방법을 찾고 있나요?
상근: 그런걸 찾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부모모임에 오게 됐어요. 사실상 거의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사실 엄마는 제 정체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혼 후 자기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해요. 누나랑 나이차이가 12살이 나는 늦둥이 아들인데 그런 아들이 게이라고 하니까 엄마 인생은 결혼부터 자식까지 싸그리 망가졌다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런 걸 내가 해결해줄 수는 없는 문제잖아요. 부모모임 영상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여기와서 내 정체성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우리 엄마 인생에서 우울한 게 하나쯤은 줄어들지 않을까, 엄마 집에 가도 일부러 다른 얘기만 많이 하는데, 일부러 누나랑 조카들이랑 같이 가고. 그런걸 정면돌파 해볼까. 마지막 수단으로써. 살면서 느낀 게 내가 할수 있는 걸 최대한 해봐야 후회가 남지 않지. 내가 그냥 한국을 떠난다거나 하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아요.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료집 보내주고 옛날에 안 해봤던 노력을 할 생각이에요.
재연: 저는 지금은 엄청 오픈리 게이에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고등학교 때만해도 완전 디나이얼, 스스로를 부정하는 게이였어요. 아까 어떤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게이포르노를 보면서도 저는 게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미리 계획을 짰거든요. 친척집 갈 때 결혼 얘기나 이런 잔소리 듣기 싫어서 안갈 계획들. 그러다 나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살할 생각을 했어요. 나는 애가 없을텐데, 나중에 늙으면 나를 돌봐 줄 사람이 없을 거니까. 그러다가 대학 입시 준비할 때 외국어 특기전형으로 갔는데, 학원에서 뉴질랜드 많이 살다온 누나를 만났거든요, 개방적인 누나였어요. 그 누나한테 맨 처음 커밍아웃을 했고 잘 됐고, 그 순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 후로 더더욱 커밍아웃을 많이 하게 되고. 첫 번째 커밍아웃이 성공적이었던게 되게 좋은 영향을 많이 줬어요. 그러다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하게 됐는데, 엄마는 괜찮았는데, 어느 날 아빠랑 다른 걸로 다투면서 아빠한테 실망이라고 했더니 아빠가 네가 커밍아웃했을 때 나는 실망 안 했는줄 아냐고. 그 때 정말 자살할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어쩌다보니 지금은 가족이랑 잘 지내고 있긴 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커밍아웃을 했을 때 부모님들이 걸음을 내딛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들 수 밖에 없다는건 아는데 그럼에도 그 걸음을 내딛어줘야 하는 건 부모님이에요. 자식은 커밍아웃을 한 것만으로도 걸음을 내딛은 거거든요. 십 몇년동안 고민하다 커밍아웃한 것이기 때문에, 그 걸음보다 클 수는 없어요. 그래서 자식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 더 이상 자식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부모가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어나더: 이 얘기에 대해 다른 부모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꽃: 사실 부모님도 어느 날 공을 툭 던진건데, 오신 분들은 빨리 이해한 거겠지만 거부하시는 부모님들은 공을 일단 받았어요. 그런데 부모들은 부정적인 걸 먼저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자녀분들에게 실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녀분들은, 본인이 십 몇년동안 고민을 했듯이, 부모에게도 시간을 주었으면 해요.
뽀미: 부모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이미 안에 들어와 있고 다 묻어있어요. 공 받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고민이 시작된거에요. 인내심이 필요해요. 그런데 공도 던지지 않고 스스로 난 죽어버려야지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거죠. 죽으려고 생각하는 것도 행복하지 않고, 공을 던져놓고 반응이 없어도 행복하지 않으면, 일단은 던져놓고 행복하지 않자구요. 그게 잘 해소가 돼서 행복할 수도 있잖아요.
채린: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의 관계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형성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관계는 다 타인 대 타인으로 있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돈독해질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가족이라도 남보다 못한 관계도 있는 거고. 제가 어머니랑 지금 이렇게 친해진 건 끊임 없이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커밍아웃 후에 자살 생각을 할 정도였어요. 그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부모님과 잘 지냈는데 갑자기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가족을 잃게 되는 상황에 놓인 기분, 그래서 엄마를 잃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싸웠어요. 그렇게 부딪혀야 해결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하기도 전에 포기하지 말고 하고도 1~2년 만에 행복해질거라 생각하지 말라고 주변사람들한테 많이 얘기해요. 서로 포기하지 않고 서로 사랑한다는 걸 외면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재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한테 기다려달라고 말할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제가 공은 던진 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드는게.
지인: 부모도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부모가 완벽하지가 않아요. 지금도 뭘 바라냐면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뽀미: 공을 던지는 자체가 죄라고 느껴진다고 하는데, 부모 입장에선 내 자식이 저렇게 말하게 된 모든 상황이 내 죄 같아요. 그런 죄책감을 가져요. 나 때문이라고. 그래서 스스로가 삐뚤어지는 거예요.
사과 엄마: 실제로 부모들은 사랑을 주는 사람, 특히 엄마라는 사람들은 먹이를 입에 넣어줘야 하는 그런 역할이라는 게 습관이 된거 같아요. 얘한테 사랑을 줘야한다는. 그러다보면 사랑 자체가 습관이 돼요. 그러다보면 엄마들은 특별히 사랑이 많지 않아도 못해준 게 너무 가슴에 맺히는 거에요. 아들이 게이라고 했을 때,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강한 듯 하면서도 쉽게 배우면서 단순하게 실천을 잘하는 성격이다 보니까 아들이 중학교 때 전교 1등으로 들어가니까 1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96점을 받아와도 때리고, 심하게 때린 날이 기억이 나는거에요. 그때 영향으로 얘가 의식이 맛이 갔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까 결국 내 아들을 게이로 만든 게 저라는 생각에 한이 맺히죠. 오늘 여기 모임에 와서 보니까 나 편할대로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서로 너무 죄책감으로 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과: 제가 엄마한테 힘든 얘기를 별로 안해요. 저는 엄마한테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거든요. 엄마가 죄책감을 가지는 부분은 항상 아쉬워요. 일단 엄마가 때려서 게이가 된 게 아니고 , 엄마가 죄책감을 가진다는 사실이 저에게 죄책감으로 와요. 그게 항상 기분이 그래요. 엄마랑 가끔 둘이 싸울 때 내가 너를 때려서 게이가 되었고 그래서 죄책감을 가진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게 정말 스트레스였거든요. 죄책감은 누구나 들 수 있어요. 당사자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거죠. 근데 그 과정이 서로에게 기분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재연: 제 이름이 부드럽게 싣다. 라는 뜻인데, 아빠가 네 이름을 그렇게 짓지 말 걸 하는 말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근데 이게 농담으로 한 얘기가 아니라 진지하게 나온 얘기에요. 그런데 모든 부분에서 부모가 죄책감을 느끼는 만큼 저도 모든 부분에서 죄책감을 느껴요.
뽀미: 그래서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걸 늘상 지니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죄책감을 갖지 않아요. 죄책감을 갖지 않으니까 이게 분리가 돼요.
몽: 저는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는데, 제가 공을 던지고 엄마가 죄책감을 갖는다면 제가 먼저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아빠 죄가 아니라고. 왜냐하면 엄마아빠가 죄책감을 갖는다면 제가 또 죄책감을 갖게 되잖아요. 해결하려고 공을 던졌는데 엄마가 힘들면 저도 힘드니까.
예림: 엄마가 오빠 커밍아웃 후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된것 같다고,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어요. 그래서 오빠가 저한테 하는 말이 자기는 불량품 같대요. 엄마 잘못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고.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주는 게 굉장히 큰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커밍아웃을 안했는데, 저는 엄마가 죄책감을 느낄까봐 그게 제일 두려워요. 커밍아웃을 하는게 무서운 이유가 엄마아빠가 저 버릴까봐가 아니라 엄마가 죄책감 느낄까봐가 제일 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식이 두 명 밖에 없는데, 저까지 성소수자면 엄마는 내가 정말 소수자만 만들었구나 죄책감을 느끼는걸 알기 때문에 죄책감이 제일 무서운 요인인거 같아요.
진형: 자식과 부모 관계에서 죄책감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들이 이전세대로서의 죄책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회를 만들어왔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걸 활동의 방향으로 표출해주셨으면 해요.
약수: 저는 부모님한테 최근에 들켰어요. 제가 2년동안 교제해온 친구가 있는데 샤워할 때 거실에 휴대폰을 뒀는데 카톡이 와서 누나가 그걸 보게 됐어요. 친구라고 소개시켜줬는데 친구가 아니었다는 걸 알고 누나가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며칠 뒤에 누나한테 카톡이 왔거든요 고민 없냐고. 없다고 했더니 성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 땐 몰랐는데 누나가 며칠 동안 찾아보고 질문한 거였어요. 그 때 고민을 되게 많이 했는데, 모면하기 위해서 혼란같은 게 있다고 얘기할지 정확하게 커밍아웃 할지로요. 전자로 얘기하면 고치려고 할 것 같아서 확실히 얘기를 했어요. 가족에게 커밍아웃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겪으니 겁이 많이 났어요. 그런데 누나가 혼자 못견디고 엄마한테 얘기한거에요. 그래서 삼자대면을 하게 됐는데 저는 확실히 말을 했어요. 엄마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고. 그런데 엄마는 우시면서 부탁을 하는거에요. 엄마가 빌테니까 정 안되겠냐고. 말하기 힘들지만 말을 했어요. 남자한테 관심을 갖는다고. 엄마는 단정만 짓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거마저도 제가 알겠다고 말하면 노력한다는 의미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누나가 엄마 화장실 갔을 때 알겠다고 말이라도 하라고 해서 일단 알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일단락되고 한동안은 아무 일 없이 지냈는데 엄마가 무언의 압박을 주기 시작하는거에요. 그 친구랑 교제하고 있는 거 아는데 그만 만나라고 얘기하고, 예쁜 여자애랑 교제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무언의 압박을 계속 주시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 궁금해서 여기 나왔어요. 제가 어떻게 하는게 부모 입장에서 가장 스무스하게 받아드릴 수 있을지.
어나더: 제가 부모모임 활동가로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예전에 비해서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많이 나왔어요. 인터뷰집도 있고, 부모님과 자녀간 어떻게 의사소통하고 어떤지식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북도 나와있고, 어머니한테 이런것도 있다고 넌지시 보여주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거 같아요.
상근: 저분이 제가 커밍아웃한 상황이랑 비슷해요. 제가 누나한테 커밍아웃했을 때 큰누나가 바로 엄마한테 아웃팅했거든요. 제가 커밍아웃하고 가장 압박을 받았던 건 경제적인 압박이었어요. 그럴거면 이집에서 나가라는 반응때문에. 제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니까 힘들었어요. 저는 한번도 스무스하게 접근하려는 시도가 없었어요. 항상 정면돌파했죠. 엄마한텐 회피하고. 갈등을 하든 회피를 하든 어떤 일이든 일어나게 돼요. 그래서 내가 할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시도해보는 게 좋은 것 같은데, 지금 회피를 하시는 거 같아요, 저처럼 10년 넘게 엄마와 제 상황처럼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가지 계획을 세워서 지금과는 다른 시도를 해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채린: 제 엄마도 은근슬쩍 압박을 주고 했는데, 은근슬쩍이라도 그게 당사자들한텐 상처가 될수도 잇잖아요. 그럴 때 저는 엄마한테 똑같이 했어요. 그냥 길 가다가 엄마가 저 남자 어떠냐는 식으로 물어봤어요. 그러면 엄마한테 나는 저 여자애가 너무 좋은데 하고 대꾸했죠. 서로 상처를 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러다가, 3~4년동안 일상에서 익숙해지니까 동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서로에게 인내심이 필요한 거 같고, 저도 가끔 센치해지면 막 쏘아부치기도 했고.
약수: 저는 엄마한테 툭툭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잇는데, 항상 내가 하는 말이 엄마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항상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엄마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하다보니까 엄마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항상 얼음이 되거든요. 지금 꺼내기가 무서워요. 지금 잘 지내고 있는데, 다시 싸우게 되고 그럴까봐.
어나더: 저 같은 경우는 한 번 깨뜨리고 공백 기간을 가지고 있어요.
몽이: 저는 일단 부모님과 친구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엄마아빠한테 일상적으로 친구처럼 밥먹었어? 나는 저 남자 마음에 드는데, 이러면서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준 엄마: 부모님은 기대를 갖고 계신 거에요. 얘는 여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수 있을거라고, 확신 있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그렇게 살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약수: 엄마가 말씀하시는게 노력도 안 해보고 그런다고, 그래서 나중에 노력해봤는데도 안된다고 거짓말을 할까 생각 중이에요.
예준 엄마: 아마 한번 노력해봤으니까 더 노력해보라고 할 것 같아요.
진형: 부모님하고 나를 남남으로 생각할 필요도 있는 것 같고, 나를 착한 아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착한아이인데 부모님한테 실망을 시켜드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람보: 저도 부모모임을 알게 되면서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 가능하시다면 부모모임을 알려주시고 더 나아가서는 나오라고 권유해보시고, 조금씩 이해해가면 좋지 않을까.
채린: 어머니랑 같이 사소한 것들을 나누면서 중간중간 진지하게 원론적인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서. 행복은 개인적인, 상대적인 것이고. 누군가는 아이스크림 하나로 행복할 수도 있겟지만, 아이스크림 가게를 다 차려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이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가 다르다는 걸 확실히 인식하고,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행복이 아니겠냐고, 삶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시면. 저는 그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헤이든: 저도 다섯단계 정도의 자기 수용을 거쳤는데, 그걸 느껴보면서 부모님에게도 그런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커밍아웃을 하고 시간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서 먼 한국으로 오게 된건데, 생각해보니까 그게 이기적인 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미국에 사는 동생은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주로 데이트하는 사람이 백인 군인이라 부모님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지르고 한국에 온 반면 동생은 매우 다르게 오히려 부모님께 더 어필하고 있고요. 자기만의 방식이 다 있는 것 같아요. 결국은 어떤 방식이든 모든 단계를 거치게 되는 것 같아요.
(소감)
태희: 온지 얼마 안됐는데 소감을 말하게 되네요. 저는 부모님께 커밍아웃은 안했는데 오늘 엄마 만나고 왔어요, 엄마가 평생 속 안 썩였는데 마흔까지 결혼 안하고 속썩이고 있다고 해서 지금 결혼하는 게 속썩이는 거라고 얘기를 하고 올라왔어요.
시엘: 저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성애자로써 평생 이성애자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랐어요, 그런데 몇 년 전에 그게 아니라고 알게 됐어요. 오늘 오게 된 것도 제가 지금은 이성애자지만 나중에 다르게 정체화하게 된다면 어떻게 부모님한테 상처를 주지 않고 잘 얘기할 수 있을까 배우고 싶어서에요. 감사히 잘 배우고 갑니다.
국화 향기: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반사람들은 더럽다는 표현을 쉽게 내비치잖아요. 지금은 그런 말을 들을 때 제가 상처를 받고 있어요. 앞으로는 내가 그런 상처를 안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내가 강해져야 하는데. 아직까진 상처받는 단계인거 같아요. 아직까진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런 힘까진 기르진 못한 것 같아요. 사실 아직 좀 두려워요. 하지 말라고 했을 때 내가 공격 당할까봐. 지금은 제가 먼저 강해져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