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1차 정기모임 대화록
2016-05-12 오후 20:21:57
날짜: 2014.03.18
장소: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
참석:
- 옥: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망고: MTF 트랜스젠더 딸을 둔 어머니
- 모리: 게이(부모님과 누나들이 게이인 걸 알고 있음)
- 욜: 게이(부모님과 남동생이 게이인 걸 알고 있음)
- 덕현: 게이(부모님과 여동생이 게이인 걸 알고 있음)
속기자: 모리
(속기는 세 분 어머니의 동의를 받은 뒤 진행했습니다. 이야기를 기록하기 원하지 않으시면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 공개 전에 세 분 어머니의 검토를 받았습니다.)
< 자기소개/근황토크 >
욜: 욜이라고 합니다. 게이이구요, 부모님이 알게되신지 17년이 됐는데 변하시지 않네요. 어머니는 굉장히 잘 아시고 아버지는 그냥 조용히 계세요. 막 (여자랑) 결혼하라고 계속 말하시거나 그러시진 않지만.
고2 청소년 시기 때 게이라는 정체성을 확신했고 아직까지 변하지 않고 있어요.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은 중2때부터도 있었어요. 그 시절엔 인터넷도 없고 그래서 정보가 너무 없었어요. 티비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동성애자가 나온 걸 보고 처음 ‘난 그런 사람이구나’ 했어요. 대학때 성소수자 모임에 처음 나갔어요. 95년도에 티비에 방영이 되기 시작했는데, 근데 그게 트랜스젠더여서 나와 같은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대학 때 모임에 나가고 나서는 안도감이 들었죠.
군대에 갔을 때 편지가 들켜서 정신병원에 가서 부모님에게 알려졌어요. 군대에 있을 때 아버지가 술을 사들고 오셔서는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신건지 “(이성애자로) 변하는 사람도 있고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노력을 하자”하고 말하셨어요.
부모님이 만기 전역하기를 너무 원하셔서 만기 전역 했어요. 한참 후에 부모님한테 다시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게 20대 중반인데, “너는 안 변하는 거냐?”하셨어요.
근황토크이니까 부모님 근황을 말씀드리자면 부모님은 최근 아파트를 사셔서 굉장히 즐거우신 상태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은 다 둘이서 늙는데 정욜은 혼자 외롭게 늙어 죽을까봐 그게 너무 불쌍하다고 지금도 집에 들어오라고 하세요. 새 집에 방이 하나 남는다고.
어머니는 원래 교회를 굉장히 열심히 다니시는 분인데 제가 동성애자인 걸 알게 되신 후에 기도를 해도 제가 안바뀌니까 지금은 교회에 안 나가세요. 성소수자를 지지해주는 교회도 생겼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가려고 하진 않으세요. 한 가지 어머니에게 미안한 점은 어머니가 만나던 사람들이 다 교회 공동체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교회를 안 나가시니까 그 인맥이 끊기게 돼서 좀 미안하죠..
지인: 성소수자를 지지해주는 교회가 있나요?
[ 성소수자를 지지해주는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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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욜은 너무 착한 아들이었나봐. 우리 애는 욜 같진 않았어요. 너무 드러내고, 온갖 신호를 다 보내고. 근데 난 그게 정확히 어떤 신호인진 몰랐던 거죠. 성소수자에 대한건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여기 동인련 사무실에도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지만 그냥 ‘디자인이 예쁘다’, ‘색깔이 좋다’ 하는 생각만 했지. 애가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하고 난 이후에는 그동안 눈치를 못챈 게 조금 미안하더라구요.
욜: 자녀분이 어떻게 커밍아웃하게 된 거에요?
망고: 작년에 제가 다니는 직장에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레즈비언이 한 명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애한테 엄마 직장에 그런 사람이 들어왔다고 했어요. (엄마 입에서 성소수자 얘기가 나오니까) 아마 그래서 애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애가 진지하게 말을 꺼내더라구요. 자기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것 같다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그럴 수도 있어. 엄마도 남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라고 하면서 애한테 “그럼 성소수자 단체라도 찾아가서 확실한지 알아봐”했는데 보니까 진짜더라구요. (웃음) 동인련 자료집도 가져다주고 그랬는데 안 읽더라구요. 혼자 이미 인터넷으로 다 찾아본 거죠.
욜: 그래도 아니길 바란 마음이 좀 있으셨던 거죠?
망고: 맞아요. 그래도 게이까지는 어떻게 이해가 될 것 같은데 트랜스젠더라니까. ‘얘가 날 아주 끝까지 밀어붙이는구나.’
지인: 그럼 1년 정도 밖에 안 된 건데 그렇게 지지하게 되신거에요?
망고: 어쩌겠어요. 일이 벌어져버렸는데. 내 새낀데. 버릴 수 없으니까. 근데 이제 애가 가지고 있던 짐이 나한테 온 거지. 신랑은 아직 모르거든요. ‘신랑한테 언제 말을 하는 게 좋은 걸까’하고 계속 고민해요.
애가 ‘누나’, ‘형’, ‘새끼’ 이런 단어를 쓰면 그때마다 날카롭게 지적을 해줘서, 이제 남녀 구분 없이 말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돼요. “사촌 형, 누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촌”이라고 하는 식으로. 애가 이름도 바꾸고 과거의 기록을 다 지우고 싶어해요. 예전부터 MTF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들이 커밍아웃 이후에 퍼즐 맞춰지듯 맞춰지는 그런게 있어요.
지인: 그래도 어릴 때 여성스러웠다던가 그런 건 없었어요?
망고: 그런 게 없었어요. 애가 성격도 난폭하고 그랬으니까. 하나 있는 건 선생님 말을 잘 안 듣고 학교 생활도 적응 못하고 그런 게 있었는데, 자기 딴에는 여자 번호 남자 번호, 남자 줄 여자 줄로 선택하는게 힘들었던 거죠. 자기는 여자라고 생각하는데 남자 줄에 서고 남자 화장실에 가야하니까. 학교에서 ADHD(주의력결핍성과잉행동장애) 뭐 그런거라면서 병원에 가라 그랬는데, 검사결과 ADHD도 아니었고. 우울증이 있다고 해서 우울증 검사도 해봤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고 해서 갔는데도 애가 의사를 간을 보는거죠. 의사를 믿는 게 아니라.
어릴 땐 방 문을 항상 잠궈 놓고 있었어요.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애가 문을 잠그고 있어서 ‘저 안에서 애가 죽어있으면 어쩌지’하고. 집에 돌아오면 식탁에 칼이 꽂혀 있고 그랬어요. 뭔가 표출하고는 싶은데 그걸 표출할 곳이 저 밖에 없으니까 저한테 그렇게 표현했던 거죠. 아빠에 대한 적개심도 엄청 강했어요.
저한테 커밍아웃하고 난 이후에는 방문을 안 잠그더라구요. 얘기할 때도 자주 웃고. 아빠랑도 사이가 좋아지고. 저한테 방을 같이 쓰자고도 했어요. 애가 마음의 안정을 찾으니까 저도 안정이 되더라구요.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신랑은 이 평화가 왜 찾아왔는지 몰라요. (웃음) 애가 철 들었는 줄 알아.
지인: 그래도 이제 고민이 생기면 엄마랑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망고: 그래서 내가 죽겠는 거야. 한번 이야기를 하면 새벽 두세시까지 하거든요. 지는 학원을 오후에 가니까 늦게 까지 잘 수 있어요. 이제는 혼자 해결해도 될 것 같은 걸 계속 이야기하니까.. (웃음)
지인: 그래도 우울감이 없어지는데에 엄마가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아요.
망고: 요즘엔 이제 좀 애가 파악이 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아빠랑 워낙 많이 싸우길래 ‘남자들끼리의 뭔가 그런게 있는 건가?’ 했었거든요. 요즘에 저는 애가 말을 더 잘할 수 있게 일부러 푼수짓을 해요. 원래부터 엄마를 우습게 알기는 했지만요. (웃음) 아빠는 너무 각이 딱딱 잡힌 이야기만 하니까 내가 모자란듯하게 보여야 저한테 더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모리: 저는 3년쯤 전에 누나가 부모님한테 아웃팅을 해서 부모님이 제가 게이인 걸 아시게 됐어요. 부모님이 알게 되신 후 처음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고, 안 좋은 말도 서로 많이 오갔어요. 그 중엔 정말 심한 말도 있어서 그 후 일년 반 정도 가족들이랑 연락을 끊고 살았어요. 부모님한테 연락 오면 다 무시하고. 그러다가 아버지가 동성애자인권연대에 후원을 시작하면서 부모님이랑은 어느 정도 화해를 했어요. 아빠가 가장 많이 지지해주시고, 엄마는 사실 그렇게 지지하는 편은 아닌데 아빠를 따라가고 있는 그런 상태이고, 작은 누나는 제가 게이인 걸 알고 난 이후에 한 번도 연락온적이 없고, 큰누나랑은 제일 사이가 안 좋아요. 지금은 부모님이랑 다시 싸워서 또 연락을 끊고 있는 상태에요.
지인: 그럼 부모님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모리: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이게 부모님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고, 그래서 막 너무 부모님을 몰아세우진 않으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욕심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좀 있어요. 예를 들어 엄마는 전화 통화할 때 제가 게이인 부분은 절대 얘기 안해요. 그냥 학교 잘 다니고 있는지 그런 것만 물어보고 끝이에요. 일부러 말을 안 하려고 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런게 좀 아쉽죠. 만나는 남자는 있는지, 김조광수 감독님 결혼이 어땠는지, 동인련에서 활동하는건 어떤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아빠랑은 그런 이야기도 하거든요.
지인: 영화을 같이 보는 건 어때요? ‘바비를 위한 기도’라는 영화도 좋을 것 같아서. 왜냐면 저도 그랬었거든요. 애한테 얘기 할 때 그 부분은 말 안 꺼내고 그랬어요. 저는 애 형이 “엄마 아빠 이 영화 봤으면 좋겠다”고 영화를 보내줘서 봤더니 생각이 확 바뀌게 되더라구요. ‘지금 내가 고민하는 이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망고: 정말 애가 죽는 것 보다야 살고 싶은대로 사는 게 훨씬 낫죠.
옥: 저도 어떤 책을 읽고 난 뒤에 무조건 아들을 응원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어요. 그 책 내용은 크리스천인 엄마가 게이인 아들을 고쳐주시기를 밤낮으로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들이 괴로워서 자살하는 얘기였어요.
물론 아직도 내가 어떤식으로 얼마나 응원해야 하는지는 늘 고민이에요. 모리 얘기 중에 부모님을 이해하면서도 욕심일 수도 있는 조금 더 적극적인 관심을 바라는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요.
덕현: 그 책이 ‘커밍아웃’이라는 책인데, 아빠한테도 드렸는데 거부하셨어요. “아빠는 너가 누굴 좋아하는지는 괜찮은데, 굳이 책을 읽어가며 보고 싶진 않다”고 했어요. 아빠보단 엄마가 더 고마웠던 게, 저는 커밍아웃을 했을 때 이것저것 물어봐주길 바랬어요. 마음에 묻혀 있던 게 많았으니까. 엄마는 많이 물어봐주고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아빠는 인정한다고만 하고 물어봐주지 않으니까 그 속을 알 수가 없는 거에요. 한 7년 정도 지났는데 아빠는 지금도 그래요.
옥: 덕현이가 군대 가기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부모로서는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부대가 집이랑 가까워서 휴가 때 부대에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고 그러면서 차에서 이야기를 제일 많이 헀어요. 오히려 그 이후로는 그 시간이 그리워질 정도에요.
덕현: 제 경우엔 엄마랑 이야기할 때 엄마도 힘든 시기였고, 저도 여성주의를 접하고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됐던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엄마가 들어주기만 하는 것 보다 서로 서로 들어주는.
지인: 군대에서는 안 힘들었어요?
덕현: 힘들었죠. 그래서 오히려 엄마랑 더 이야기할 게 많았어요.
망고: 우리 애도 군대가 걸려있어서. 마음 같아선 다른 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욜: 저희 엄마도 그래요. “너가 원하는 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고 하시거든요.
지인: 학교 다닐 때 괴롭힘 당하고 그런 건 없었어요?
욜: 어린 시절은 기억이 안 나요.
덕현: 여자라고 놀림은 받았는데 잘 지낸 편이에요. 애들이 ‘덕자’라고 불렀어요.
모리: 저도 그런 별명 있었어요. ‘수옥이’. 저도 놀림은 받았는데 많이 괴롭힘 당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공부를 잘해서 애들이 잘 안 건드리기도 했고.
지인: 저희 아이는 학교생활이 내내 힘들었어요. 그러다 제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됐을때 며칠동안 싸웠어요. 애랑 그렇게 싸운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그 생각을 바꾸게 하려는 생각만 하게 됐었어요.
제가 제일 심하게 한 말이, “같이 죽자”였어요. 그때부터 일년 동안 계속 사이가 나쁜 거에요. 얘는 그 말이 계속 맺혀 있는거에요. 상담 선생님한테도 ‘우리 엄마는 같이 죽자고 하는 사람이다’ 하면서. 그 말을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그냥 “나가 죽어!” 하는 것 보다 그게 훨씬 더 진지하게 들렸을 수도 있을 것 같더라구요.
저는 애가 생각만 딱 바꾸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는 건 줄 알았어요. 여자 좋아하려고 생각하면 되는거라는 식으로. 부모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인정을 해주면 더 그렇게 되는 줄 안다는 거예요. 사실은 인정 해주든 말든 아무 상관 없는 건데. 그냥 애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지지해주는 게 제일 좋은 건데.
저도 저번 달에 여기 부모모임 초동모임 오고 나서 훨씬 밝아졌어요. 저는 상담받는 거 백날 해봐도 소용 없었는데 이렇게 바뀐거에요. 저 아는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그렇게 밝아졌냐고 물어요.
망고: 저번에 뵀을 때 보다 훨씬 밝아지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내가 갖고 있었던 편견이라는 걸 제 경험 속에서 보면, 제가 파주 쪽에서 자라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엄청 강했어요. 어릴 때 막 삐라 주워서 학교에 가져가면 공책으로 바꿔주고 그랬거든요. 근데 사회에 나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하나의 세계가 파괴된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나의 계급적 위치가 내가 생각하는 그 위치가 아니구나,하는 생각도 하면서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걸로 보면 동성애자도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거에요. 이 문제를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걸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편견을 많이 깨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그냥 이론적으로 공부를 했더라면 그냥 남 얘기 같았을 것 같아요. 요즘엔 막 보이기 시작해요. 우리 회사에도 몇 명 보이고.
지인: 저는 텔레비젼 보면서 그래요. 남자 아이돌 보면서.
망고: 만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터널 통과하면 새 세계가 보이듯이, 이제 길에서 커플들이 보이고, 신호들이 보이는거죠. 무지개색 귀걸이라던가. ‘아, 요것들이 이렇게 소통하고 살았구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좀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죄 지은 것도 아니고 사회 전체의 책임인데. 차별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내 새끼가.
지인: 저도!
망고: 애랑 병원에 트랜스젠더 진단을 받으러 갔는데, 그게 그 의사 선생이 상담 자격이 없는 거죠. “너는 여자와의 섹스를 상상하냐, 남자와의 섹스를 상상하냐” 이러니까 애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화를 내고 나온 거예요. 그랬더니 의사도 불쾌한 표정으로 저를 부르더니 애가 어려서 진단해줄 수 없다는 식으로 막 가라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진단도 못 받고, 약도 못 받고 오는데.. 제가 너무 불쾌하더라구요. 근데 이런 걸 애가 살아가면서 계속 경험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화가 났어요.
덕현: 사실 같은 사실을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혐오를 퍼트리는데 이용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성소수자의 자살율을 이야기하면서 “당신 자녀가 불행한 성소수자가 될 수도 있으니 동성애에 반대해야한다”고 말하는 거죠.
지인: 맞아요. 근데 또 사실 우리 나라가 안 그럴 것 같지만 쪼그만해서 확확 바뀌거든요. 지금은 좀 힘들게 살지만 금방 바뀌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해요. 남자애가 여자처럼 행동하는거나 동성애자도, 모두 사회가 안좋게 보도록 편견을 만들어서 그렇게 된거쟎아요. 미국도 그랬지만 편견을 깨는 건 당사자들이 아니라 부모님들이나 가족들이 나서야 가능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