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9차 정기모임 대화록
2016-05-12 오후 20:27:19
성소수자 부모모임 아홉 번째 정기모임 대화록
 

 

 

 
일시: 12월 19일 화요일 7시
 
장소: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참석: 
-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옥: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산지기: 게이 아들을 둔 아버지
- 모리: 게이(부모님과 누나들이 알고 있음)
- 달꿈: 레즈비언(부모님과 남동생이 알고 있음)
- 바람: 남성 범성애자(부모님과 형이 알고 있음) 
- 민수: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호두: 퀴어(가족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름)
- 하나: 레즈비언(부모님과 언니가 알고 있음)
- 해리: 퀘스쳐너리
- 모카: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속기: 모리
 
 
* 모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울시의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거부와 박원순 서울 시장의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에 대한 저항으로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이 시청 점거 농성을 했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1부 -
 
모리: 반갑습니다. 오늘도 새로 오신 분이 계시네요. 산지기님은 저희 아버지이신데, 처음 오셨으니 맨 마지막에 소개하시는 걸로 하고 다른 분부터 자기소개와 지난 한달 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달꿈: 저는 모리 친구구요. (웃음) 스물 여덟이고 여성 동성애자이고 애인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일은 여기랑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 방과 후 공부방에서 저소득층 아이들 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요즘은 연말이라 정신이 없어요. 신입생을 받는 시즌이기도 하고, 졸업하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연말 발표회를 마무리해서 그나마 한숨 돌렸어요. 일년 반 전에 부모님 두 분께 커밍아웃을 했어요. 진지하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다음부터는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꺼리시는 건지, 다시 꺼내기에 서로가 민망한건지. 그래도 엄마를 볼 때마다 고마운 느낌은 있어요. 얘기는 안 꺼내셔도 부모님 입장에선 무시할 순 없잖아요. 근데 여전히 안부를 묻고 그러시는 게 고마워요. 저번에 같이 영화 ‘마이차일드’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어제도 엄마한테 안부 연락이 왔어요.
 
모리: 저는 모리라고 하구요, 스물 여섯 살 남성 동성애자에요. 4년쯤 전에 부모님과 누나들이 제가 게이인 걸 알게 됐는데, 그 후에 부모님과는 사이가 안 좋았다가, 화해 했다가, 다시 안 좋았다가 다시 화해를 한 상황이고, 큰누나와는 계속 사이가 안 좋아요. 작은 누나는 제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된 그날부터 한 번도 연락이 안 된 상태예요.
 
바람: 어머니랑 형이 알고 있는 것 같아요. 7월부터 자취를 하고 있어요. 3월쯤에 형이 제 컴퓨터에 있는 야동을 발견해서 엄마한테 말했어요. 형은 엄마 눈 밖에 나 있어서 그냥 넘어가긴 했는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형이 저를 많이 때렸어요. 형한테 맞는 바람에 엄마가 자취방을 얻어줬어요. 곧 고등학교 졸업해요.
 
모카: 모카구요. 어떤 이야기하는지 궁금해서 와 봤어요. 엄마랑 형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 형은 군대에 있어요. 엄마한텐 올해 초에 커밍아웃 했어요. 엄마만 아세요.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우셨어요. 바람이 엄마한테 대신 이야기 해줬어요. 동성애에 관해서 읽어 볼만한 걸 드렸는데 읽어보지도 않으시더라구요. 그 후론 이야기 안 하고 있어요. 
 
민수: 동성애자에요. 부모님과 여동생이 다 알고, 친척 중에 일부가 좀 아는 것 같아요. 페이스북에 쓴 게 많거든요. 딱히 숨기거나 그러는 게 아니라서 같이 연구실에 있는 사람도 다 알아요. 근황을 이야기하자면, 논문이 끝나가고 있어요! 문제는 끝나고 뭘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 캐나다로 갈까도 생각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그런 꿈이 있었거든요. 근데 최근에 시청에서 농성하면서 ‘한국을 나가는 것만이 답인 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과는 여전히 사이가 안 좋아요. 어머니는 자기를 이제까지 속였다는 것에 분노하시고,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예의가 없다’, ‘가족으로서 그런 부분을 인정할 수 없다’, ‘내가 너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고 하세요.
 
호두: 저는 오늘 처음 왔어요. 호두라고 하구요. 나이는 절대로 밝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는 근데 사실 가족과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고, 사실은 그런 압력도 잘 없어요. 일단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따로 살고 있고, 물론 경제적 지원은 받지만 어렸을 때부터 워낙 일반적인 성역할의 캐릭터로 살지 않아서 그런 압력을 잘 안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딱히 갈등의 상황이 된 적은 없어요. 가령 얼마 전에 친형이 결혼을 했는데, 그의 결혼은 결혼인 것이고.. (웃음) 어른들은 자식의 결혼을 인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그걸 자신의 소명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막연하게나마 정형화된 삶에 대한 거부를 예전부터 표명해서 그런 압력은 적어요. 사실 저는 퀴어 당사자들 앞에서도 은폐하고 있는 것이 꽤 많아요. 여기 있는 분들이 자신을 남성 동성애자라고 소개하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고, 굳이 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오인하도록 그냥 놔둬요.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나와 얼마나 친한가이지 내가 어떤 사람인가는 당면한 과제는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과의 문제도 없는 편이에요. 
 
달꿈: 그거에 대해서 부모님이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호두: 저로서는 오히려 그런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위장결혼도 하잖아요? 부모모임에도 사실 관심이 없었어요. 나의 부모와 딱히 갈등이 없어서. 갈등이 없다기 보다는 침묵 속에 있는 고요 같기도 하지만...
 
지인: 전 자기소개를 매번 해서, 이전 모임 대화록 찾아보시면 자세히 아실 수 있으실 텐데, 간략히 말씀드리면 아들 둘 중에 둘째가 게이에요. 2년 전에 16살 때 아들 핸드폰 문자를 보고 알았어요. 그 당시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잘못 생각한 거라고, 설득하려고 했어요. “스무살 되면 인정해줄게” 같은 말도 하고, 그러다 싸우고 그랬어요. 보통 둘째들이 엄마랑 친해요. 저랑도 그 전까진 마찰이 전혀 없었는데 그걸 안 순간부터 3일 내내 싸웠어요.
 
모카: 저희 엄마도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래.”라고 했는데 저는 “그래 알았어.”하고 말았어요.
 
지인: 저도 그랬으면 괜찮았을텐데… 둘이서 마찰이 심했어요. 이후 ‘내가 동성애에 대해 알아야겠다’ 싶어서 ‘아하 성상담 센터’ 같은 곳에 상담을 많이 다녔어요. 애 형은 완전 미국식으로 생각하는 애여서, 저랑 애 아빠를 앉혀 놓고 이건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얘기해줬어요.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도 보라고 찾아주고. ‘아하 성상담 센터’에서도 “지금 게이가 맞고 아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랬는데 그 말 들을 때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걸 그 영화 보고 알았어요. 애 아빠도 영화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미국은 대학에 LGBT(성소수자) 동아리가 많아요. 그래서 그런 동아리가 있으면 지지도 받고 좋을 것 같아서 검정고시 봐서 빨리 미국 대학에 보냈어요. 지금 가장 후회되는 건 3일 동안 싸우면서 저랑 안 좋았던 시간 동안 제가 심한 말을 많이 했던 거예요. 정말 죽을때까지 후회할 것 같아요. 제가 “너 그렇게 사는 거 엄마는 못 본다. 엄마랑 같이 죽자.” 그랬어요. 애한테 그게 상처가 된 거죠. 그때부터 저랑은 얘기를 안 해요. 그 후로 작년까지 이틀에 한 번은 울었어요. 처음엔 ‘내가 잘못해서 애가 이렇게 됐나’하는 죄책감 때문에 울었는데, 좀 알게 되고 나니까 제가 그때 상처준 거랑, 애 혼자 그렇게 힘들었는데 몰랐다는 죄책감이 더 크게 밀려와서 울었어요. 제가 맨날 강조하는 게, 부모들은 두 가지를 몰라요. 하나는 이게 선택 아니란 걸 모르고, 또 하나는 자기 혼자도 괴로운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다는 걸 몰라요. 부모들이 처음 알면 ‘애가 지금 엄마 아빠를 괴롭히네.’ 하는 생각만 드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거든요. 그건 자식들이 부모에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선택하는 거면 왜 이렇게 힘들었겠냐고.
 요즘 제 지도교수와도 논쟁이 많아요. 제 지도교수는 동성애는 바뀔 수 있다고, 상담할 때도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성소수자 부모를 위한 상담에 대해서 논문을 쓰려고 하는데, 기본적인 시각에서 차이가 나니까 힘들어요.
 
모리: ‘바뀔 수 있다’와 ‘바뀌어야 한다’의 차이를 명확히 해야할 것 같아요.
 
호두: 맞아요. 아무도 이성애가 ‘바뀔 수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이성애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무엇이 “정상”인지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는 거죠. 쉽게 말해 동성애가 “비정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바뀔 수 있는지 없는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옥: 저는 서른 한살게이 아들이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은 동인련에서 활동을 했어요. 커밍아웃 후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 중에 성정체성에 대한 것을 추려 조그만 책자를 만들었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어려서부터 커밍아웃하기까지 혼자만 고민하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마음이 느껴져 저도 무척 마음 아팠어요.
 
하나: 저는 김하나구요. 부모님은 다 아세요. 아빠가 아신 건 작년 추석 때예요. 최근에 “아빠 내가 홍석천처럼 티비에 인터뷰처럼 나와도 안 창피할 것 같아?”하니까 “니 인생이니까 니가 알아서 해라”하셨어요. 아빠는 불교고 엄마는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갖고 계세요. 작년까지만 해도 사무직 하다가 지금은 그만두고 정비 일을 해요. 일 한지는 6개월 정도 됐어요. 그 일 시작한 것도 여자 둘이 살면 힘들 테니까 아빠가 정비 일을 배우라고 해서 시작한 거예요. 서른입니다.
 
해리: 직장인 민해리입니다. 회사 집 회사 집을 반복하고 있어요.
 
산지기: 모리 아버지입니다. 제가 집은 부산인데 밀양에 산 가까운 곳에 집을 하나 지어서 혼자 살아요. 주말부부입니다. 가족이 여섯인데 전부 뿔뿔이 흩어져 살아요. 사실 오래전부터 오고 싶었어요. 처음에 이 모임이 만들어질 때 아들이 “오실래요?”라고 했는데 아까 모리가 “가족이랑 사이가 좋았다 안 좋았다”한다고 했듯이 그 때 사이가 멀어져서 지금에야 왔어요. 저는 사실 아들이랑은 싸운 적이 없어요. 근데 누나가 집에 와있다가 엄마 카톡을 봐서 오해가 생겨 싸우고 사이가 다시 나빠져서 오늘에야 오게 됐어요. 부모 모임이라고 했는데 카페에 대화록 올라오는 거 보니까 어머니 모임이더라구요. 아버지도 한 명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엄마가 보는 시각과 아버지가 보는 시각이 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겠지만, 여기 있는 분들이 다 자식 같으니까. 이 분들이 사는데 행복한 세상이 될까, 요만큼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올라왔어요. 모리가 막둥이입니다. 
 
 
 
 
- 2부 –
 
모카: 저는 커밍아웃 하고 나서 엄마랑 처음 싸웠어요. 저희 집이 엄마, 형, 저 이렇게 셋이서 살아서 누군가를 데려오는 게 어색해요. 근데 사귀던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섹스를 하다가 집에 돌아온 엄마한테 들켰어요. 엄마가 울면서 소리지르고 화를 냈어요. 저는 그 당시에 엄마가 그렇게 말을 할 걸 알고 있었고 무슨 마음일지 생각해 놓은 상태였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명확히 알고 있었어요. 엄마가 무슨 말 할지도 생각해봤었구요.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주로 하는 말들이 있잖아요. 엄마가 울면서 “너 왜 이렇게 사냐고” 그랬어요. 전 “내 잘못이 아니고, 엄마 잘못도 아니다”고 말했고, 엄마가 아파할 거라는 걸 알아서 “만약에 엄마가 내가 싫어서 버린다고 하더라도 나는 엄마를 사랑할거야”라고 말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계속 소리 지르면서 화를 냈어요.
 
모리: 아니 근데 그렇게 엄마 마음을 이해를 잘하면서 집에서 당당히 박을 탔어요?
 
모카: 제가 그 때 열아홉 살이어서 미성년이라 모텔도 못 가고 돈도 없고 그래서..
 
바람: 엄마한테 저도 들켰어요. 한번은 야동을 보다가 들켰는데 엄마가 그냥 아무 말 안하고 넘어가셔서 더 불안했어요.
 
 
 
 
- 3부 -
 
달꿈: 산지기님은 처음 아셨을 때 어떠셨어요?
 
산지기: 3년 전 겨울에 둘째랑 막내가 서울에 있었는데 발렌타인 데이에 둘이서 만나서 밥 먹고 그러다가 작은 누나가 우연히 막내가 게이인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언니한테 얘기를 하고 언니가 편지를 써서 저한테 알려줬어요. 저도 두 분 어머니 말씀에 공감하는게, 그 기저에는 무한한 사랑이 깔려 있다고 봐요. 실수 아닌 실수랄까요. 충격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애가 집을 벗어나려는 생각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로 대학을 갔던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땐 이 부분에 대해선 아무 지식이 없어서, 책보는 게 제 직업이라 제 3의 성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많은 양의 정보들을 공부 했어요. 지금은 오히려 부산에 이런 부모가 있으면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정도가 됐는데, 우선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거더라구요. 처음엔 섭섭한 마음, 나중엔 죄책감 등 부모가 겪는 감정의 단계가 다 정리되어 있더라구요. 수만가지 생각이 다 들죠. 네 살 때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혹이 많이 났거든요. 그런 것까지 다 생각이 났어요. 큰누나랑 사이가 많이 안 좋은데, 큰누나 마음도 부모 마음이랑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직업이 의사니까 ‘내가 좀 안다’ 하는 자부심도 있는 것 같고. 그 친구도 상처를 많이 준 게, 처음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말을 던지다보면 상처가 되니까. 카톡도 보면 활화산. 근본적인 문제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른다는 거예요. 소수자니까, 소수자가 아니라면 그냥 툭 쳐도 친밀함의 표현일 수 있는데 소수자들은 그런 걸로 상처를 너무 많이 받는 거예요. 그게 안타깝고. 여긴 어머니들이 오셨는데 저희 집은 저희 집사람보다 제가 먼저 여기 왔어요. 욕심엔 집사람도 저랑 똑같았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누나들도 다 받아들이긴 하는데 다만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르더라구요. 아까 하신 말씀처럼 저도 정상 비정상이냐 따지는 게 의미가 없다고 보는데, 애 큰누나가 어디서 논문을 찾아왔는데 지가 본 논문에는 서른 살 쯤 되면 교정이 돼서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논문이라고 해도 사실 다 자기 주장일 뿐이거든요. 교과서도 사람들은 사실만 적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주장이기만 한 거 많아요. 동성애의 경우엔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이런 논의를 하는데 제가 보니까 태생적인 게 맞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저대로 찾아본 논문에서 보니까 영국에서 동성애자의 뇌구조를 3D 분석해서 이성애자와 뇌구조부터 다르다는 결론을 낸 논문도 있더라구요. 그 논문을 포함해서 ‘이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몫이 아니다’, ‘태생적이다’는 주장을 하는 논문을 애 큰누나한테 보여줬어요. 근데 자기 자존심 때문에 힘들어하더라구요. 그래서 제 접근 방법은 이해를 시키는 거예요. 납득이 되고 수긍이 되면 아무 문제가 없이 서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데,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닌가 싶거든요. 커밍아웃을 고민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하루 아침에 바뀐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제 3의 성’이라는 것은 천 년 전에도 있었던 거예요. 그 시절에 문제가 되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연스러운 것인데, 저는 스스로 좀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이효리처럼 유기견 좋아하는 사람은 스타가 되는 세상인데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터부시 되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남은 여생을 바쳐보려고 여기 왔는데, 밀양에서 서울까지 오기가 좀 힘들지만 열심히 오려구요. 다음엔 다른 아버지도 왔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들의 역할이 있다면 아버지들의 역할도 있다고 보거든요. 시청 앞에 가서 피켓 들고 시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힘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거든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이 친구들이 상처 안 받고, 더 이상 날카로워지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인: 그럼 계속 오시는 걸로? (웃음)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청소년 센터 같은 곳에 많이 갔어요. 근데 다 부모들이 행사를 많이 하더라구요. 미국도 부모들의 영향력이 컸던 것 같아요.
 
산지기: 동의합니다. 정치적으로 당사자들보다 부모가 움직이는 게 효과적이라고 봐요.
 
지인: 제가 인터넷 기사 댓글에서 싸울 때도 엄마라고 하면 뭐라고 말 많이 안 해요. 그러니까.. 조금씩만 하면 우리 나라는 작아서 빨리 변화되지 않을까요. 
 
산지기: 아들이 부산에서도 부모모임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제가 지 애비인데 그 생각 안 해 봤겠어요? 근데 부산은 서울이랑 문화적 차이가 15년은 나요. 되면 뭐하러 제가 여기까지 3시간씩 기차 타고 옵니까. 소수자 운동하는 법학과 교수가 소개해 줘서 성소수자 자녀를 둔 아버지 세 명을 만났어요. 근데 여기 온 분들 같지 않아요. 세 사람을 만나봤는데, 자식한테 “절에 가자”고 했다는 사람도 있고, 태종대 “자살바위”에 가자고 했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까 어머니들 이야기 들으면서 다 공감이 갔어요.
 
지인: 진짜 죽자는 게 아니고, 죽을 만큼 사랑하는 거죠.
 
산지기: 경상도 사람들은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형님 동생 합시다” 하거든요. 논문 같은 거 보면 번역해서 그 아버지들한테 이거 보라고 소주 한잔 하면서 건네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바비를 위한 기도’라는 영화, 그거 약발 참 좋더라구요. 근데 지금이 2014년인데 1994년, 84년에나 했을 법한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부산은 아직도 부모모임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아는 법학과 교수 딸의 친구가 동성애자인데, 자살 시도를 여러 번 해서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나이인데, 그 부모를 만나려고 전화를 했는데, 전화 첫 마디에 쌍욕부터 하더라구요. 내가 분명히 지보다 형일낀데. 그 여학생은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고, 부모가 강제입원을 시켜서 법학과 교수가 해결해줬어요. 그 여학생은 지금 쉼터에 있어요.
 
제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중요한 병을 갖고 있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제가 살아온 역사와 주변 모든 걸 얘기하면서 풀어요. 얘기를 하다 보면 제 머리 속 걱정의 한 부분인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그런 게 아니라 ‘얘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게 애비로서의 책무인데’하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근데 정신과 선생 말에 따르면 WHO에서 섹슈얼리티를 등급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대요. 그건 UN이 제 3의 성을 인정하는 국제 규정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자녀 입장에서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적은 글은 읽어도 그냥 흘려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어머니들이 쓴 글은 읽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려요. 
 
지인: 병원이나 그런 곳에 있는 분들이 이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정신적으로 괴롭거나 왕따 당하거나 하는건 똑같은데, 성소수자가 그러면 성소수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민수: 웃자고 하는 말들이 당사자에겐 크게 다가오는 게 큰 것 같아요. 
 
바람: 상담을 받을 때 게이라고 말하면 “왕따나 괴롭힘 당한 적 있니?” 하는 질문을 해요. 작년엔 너무 화가 나서 지금 내가 상담 받는 이유는 동성애 때문이 아닌데, 왜 그 쪽으로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고, 이런 식이면 더 이상 상담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안타깝더라구요.
 
산지기: 몰라서 그래요. 상담자들도 배운 매뉴얼 대로 상담하는 걸 텐데, 너무 오래 된 매뉴얼로 상담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언론인과 정치인이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생각해요. 언론인을 만나보면 자부심이 정말 엄청나요. 정치인들은 또 그것보다 더한 사람들이죠. 그 두 집단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전략을 잘 세워야 할 것 같아요. 현대 사회는 언론의 영향력이 크니까요. 사람 모으기 힘들다고 하셨는데, 계속 이렇게 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여기서 이렇게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만 모여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 집단 최면 상태가 되요. 옆에 있는 세상을 못보니까. 우리끼리만 이야기하다보면 고인 물이 될 수도 있어요. 피켓들고 나가는 것 좋고, 그런 운동이 필요하지만 모두가 그러고만 있으면 안된다고 봐요. 그런 역할을 아버지들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전에 만났던 세 명 아버지들도, 그땐 마치 암선고 받은 사람들처럼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나중엔 제가 건네 준 자료들을 읽겠죠.
 
바람: 제 예전 애인 어머니는 자식이 힘들었던 세월은 이해하지만 여기 직접 와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지인: 저는 올해 초에 동인련에 전화했는데 덕현씨가 전화를 받았어요. 상담을 정말 잘해줬어요. 제가 부모님 좀 만나게 해달라고 그랬어요. 그렇게 이 모임에 왔는데, 똑같이 힘들었던 얘기 들으니까 마음에 확 와닿더라구요. 부모모임에 온 그날부터는 잘 잤어요. 친구사이 가족모임에 있는 부모님들도 애들한테 최대한 상처 안 주려고 같이 한강 가서 우셨대요..
 
산지기: 심리 치료에도 ‘나’가 아닌 ‘우리’라는 말이 치료 효과가 굉장히 크대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런 거라는 말이. 
 
바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공감되고, 많이 털어놓게 되더라구요. 
 
산지기: 외국 자료에도 보니까 ‘제 3의 성’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게 된 계기가, 당사자들의 몫이 큰가, 혹은 비당사자의 몫이 큰가 하는 얘기를 보니까 미안하지만 당사자의 몫이 크지 않더라구요. 저는 아들이 괜찮다고 하면 친척들에게 말할 수 있어요.
 
지인: 아닌 척 하고 있는 게 굉장히 힘들 것 같아요. 전에는 왜 꼭 커밍아웃을 해야 하나 했는데.
 
옥: 저는 처음에는 다 말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엔 오히려 굳이 말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유로워졌달까.
 
산지기: 부모들은 내 자식들이 여생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잖아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부모들이 생각하기에 덜 고생하는 길, 이왕이면 차별 없는 길을 가기를 원하는데, 부모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니까, 간섭하려는 게 아니라 조언으로 던지는데, 그런 말을 할때도 쉽게 상처를 받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비효율적으로 살까봐. 이성애자라면 큰 길로 갈 것을 좁은 길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부모로서 굉장히 속상해요.
 
모카: 저희 아빠는 군대가면 맞을까봐 운동하라고 그러세요. 근데 그렇게 말하는 게 왜 싫냐면, 저도 어떤 결정을 할 때 힘들 걸 감안하고 결정하는 거잖아요. 근데 나는 경험해보지도 못한 길인데 처음부터 힘들거라고 말하면 저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산지기: 저는 조언하는 게 요즘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저랑 자식은 30년이나 나이차가 나는데,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저는 아들이 게이라는 걸 알고 나서 내 자신에 대해 과신했던 게 완전히 무너졌거든요. 겸손해졌어요. 그런 의미에선 제 조언이 독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인: 맞아요.
 
바람: 학교에서  선생님이 니 앞가림부터 잘하라고 말할 땐 선생님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지인: 근데, 말을 안 하니까 선생님도 모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아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애한테 이메일을 보낼 때도 ‘이렇게 쓰면 애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돼요.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산지기: 뭘 말하는지도 모르고 말하니까. 그런 계산을 안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모카: 저 같은 경우엔 그런 조심스러운 말을 할 땐 미리 “이건 말하기 좀 조심스러운데”라고 말하고 시작해요. 그러면 되는 것 같아요. 
 
모리: 오늘도 시간이 다 되어서 이만 마쳐야 할 것 같아요.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은 항상 그렇듯 월 세번째 금요일인 1월 16일에 동인련 사무실에서 열립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