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12차 정기모임 대화록
2016-05-12 오후 20:29:18
기록: 조나단(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글쓴이 주: <성소수자와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 간의 솔직담백 토크>는 지난 3월 22일 ‘2015 LGBTI 인권포럼’의 두번째 섹션에 진행되었습니다. 100명 넘게 사람들이 모였고, 동그란 원 형태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시작에 앞서 자녀나 가족이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 가족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 설명한 해외 번역 자료를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이어,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들과 성소수자 당사자 몇몇이 자신을 소개했고,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말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토크에 참여했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에, 이 글에서 참여자 소개는 생략했으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몇 가지 단락으로 묶었습니다. 사회자의 멘트는 굵게 볼드 처리, 어머니들의 이야기 앞에는 ‘-’ 표시를 하여 구분하였습니다.
이야기 주제 1. 왜 커밍아웃을 하고 싶나요?
“제 경우는, 아무래도 MTF 당사자다 보니까 호르몬 치료를 위해서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혹시나 부모님께서 받아들여주시지 않을까?’ 하며 그동안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알아주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강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 거라고 말을 해왔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재작년에 갑자기 ‘결혼 안 하니? 여자친구는 없니?’ 전에는 안 물으시던 것들을 물으시더라고요. 꾸준히 혼자 살 거라고 말해왔고 받아들여주신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에게서 그런 물음이 나오니까 당황스럽더라고요.”
“저희 집은 무엇이든 솔직하게 다 말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제 성체성을 숨기니 무언가 제가 감추는 게 있구나 싶어서 어머니께서 답답해 하시더라고요. 저도 늘 솔직하게 다 말해왔는데 말하지 못하는 게 있으니 불편하고요.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 그것이 제가 커밍아웃 하고 싶은 이유인 것 같아요.”
“저는 FTM이라서 동생이 저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말이 익숙하지 않아요 그 호칭(내 젠더 정체성에 맞는 호칭)에 대한 욕구 때문에 커밍아웃 하고 싶어요. 부모님께 저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에요 라고 말하고 싶어요.”
“FTM 트렌스젠더예요. 호르몬 치료나 성별 정정을 원할 때처럼 원하는 성별대로 살고 싶으면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돼요. 이차 성징이 지나면서 몸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쪽으로 가고 내가 원하는 생각대로 나를 대해주지도 않으니까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요.”
“저는 형과 누나에게 게이라고 커밍아웃 했지만 부모님께는 아직 못했어요. 부모님은 게임으로 치면 ‘끝판왕’ 같아서 선택지가 아닌 느낌이에요. 미루다 미루다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때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죠. 하지만 ‘내가 왜 솔직하지 못한 사람처럼 죄책감을 느낄까?’ 싶을 때면, 부모님께도 솔직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트렌스젠더 당사자로서 육체성과 내면성이 다를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부모 입장에 봤을 때, 자식이 힘들 때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부모를 괴롭게 하겠지만 저는 부모님께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 주제 2. 왜 커밍아웃을 망설이게 될까요?
“저는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죄책감은 없었어요. 가족들에게 말할 것인가 말을 안 할 것인가는 내가 가족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사랑하는가에 따라 다른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가족과 분리된 사람으로 살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을 때 부모님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죠. 저는 친구들에게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아왔어요. 그런데 집에 그것을 숨겨왔거든요. 저 친구들은 내 정체성을 알고 있으니 따돌리는 것이고, 부모님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알게 되면 친구들과 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고1 때 탈학교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어요. 탈학교 이유를 불합리한 학교 제도 때문이라고 설명드렸었는데, 부모님께서 당황하셨지만 그후 궁금해하시고 내 생각을 물어봐 주시더라고요. 그때 처음, 부모님과 소통이 되고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을 때 내 삶의 전반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죠. 나를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면서요. 사람에게는 한다발의 자아가 있다잖아요. 친구들을 대할 때나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서 쉽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나를 지지해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내가 가진 애정을 발견하게 된 순간 거짓을 없애고 싶었어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어요.”
- “저희 아이도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다니기를 거부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여학생들 친구도 많고 여자 같다고 놀림을 수도 없이 들어서 아무렇지 않아 했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서 왜 그렇게 힘드냐고 물으니, 마음이 여성적이고 여리다 보니까 교복을 입은 남학생 사이에서 있는 게 너무 공포스럽고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내내 학교 적응을 못하고 지냈었는데, 그 아이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우리 아이가 성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서 그렇다는 것을 몰랐어요.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기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부모가 아이의 그 힘든 시간들을 함께 나누도록 해줘야 해요. 나중에 알게 되면 정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해요.”
“저는 사람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하지 못했던 망가진 마음 상태에서 나를 제외한 다른 세상이 다 가시를 세우고 있었어요. 가장 가까이에서 내 상태를 물어주는 게 어떨 때는 요구 같은 때로 느껴져 응답할 수가 없었어요. 별로 이야기할 이유를 못 찾았었어요. 나를 가해했던, 가해자들과 부모님들의 별다른 차이를 못 느낀 거죠. 내가 살았던 사회가 두 사회인데, 한 사회는 내가 그런걸 이미 아니까 괴롭히고 다른 사회는 내가 그런걸 모르니 자꾸 알려고 물어본다고 생각한 거예요.”
“저는 엄마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예 막막해요. 커밍아웃이 어려운 이유가 엄마에게 무엇부터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시작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요.”
“맞아요. 커밍아웃을 하려면 애초에 대화가 많았어야 하는데 부모님과 자식간에 대화가 힘든 집은 대화를 시작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에요.”
“저는 따돌림을 당해서 부모님께 말했을 때, 네가 목소리가 그러니까 놀림을 받는 거라고 제 탓을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부모님들에게 2차 가해를 받다 보니 더 말하는 데 주저하게 돼요.”
“어렸을 때부터 친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양아버지도 눈치를 주시는 편이에요. 엄마가 저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까지 엄마에게 하나 더 고통을 주어야 할까 싶어요. 엄마에게 하나 더 걱정을 안겨드리기 싫어요.”
이야기주제 3. 커밍아웃 전과 후는 어땠나요?
- “올해 19살인 우리 애도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었어요. 엄마에겐 말할 수가 없다고, 엄마는 너무 약해서 못 말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친구랑 문자 한 걸 봐서 아이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는데, 얘는 착해서 내 말을 들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너는 어려서 모른다고 하며 생각을 바꾸게 하려고 했어요. 처음에 그것 때문에 3일 동안 엄청 싸웠어요. 일단 엄마들이 제일 알아야 하는 게, 저는 선택인 줄 알았거든요. 생각만 바꾸면 되는 줄 알았어요.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힘들었는데 저는 애가 왕따 당하는 이유를 다른 이유라고만 생각했었죠.
작년, 재작년에 이삼 일에 한번씩 계속 울었어요. 내가 잘못 키워서 그랬다는 첫 번째 죄책감에 잠을 못 자고 울었어요. 그러다 더 큰 다음 죄책감이 왔죠. 걔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엄마인데 애가 뭣 땜에 그랬는지 몰랐던 거랑 아이를 힘들게 한 사람 중에 저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저도 어디 상담을 받으러 다녔어요. 상담자가 너무 무지하니까 저도 상처받기도 했었죠. 그러다 자조모임에 나오면서 먼저 애 키우신 어머니 만나고 얘기 들으며 많이 힘을 얻게 되었어요. ‘애한테 슬퍼하는 걸 보여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 들으며 아이 앞에서는 절대 힘든 내색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부모님과의 유대가 끊기면 어쩌나, 그렇게 유대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이 무서워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집을 나오며 저는 MTF라고 편지를 남겼어요. 막막했지만 집에서 받아들여주시겠다고 해서 집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다시 치료해야 한다고 하세요. 아직 사춘기라 그렇다고 말하시면서요.”
- “저는 제 아이가 게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예쁘게 하고 싶어하고. 화장을 하고 다니기도 했는데 ‘요즘엔 화장한 연예인도 많으니까’ 하며 그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다 여기 부모모임에 와서 내가 아이 성 정체성이 뭔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에게 물어봤어요. 그러자 자신은 MTF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수술하고 싶니 안하고 싶니? 물어보았죠. 본인은 하고 싶은데 애인은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군대 가는 게 문제가 되겠구나 그런 대화를 나누었어요. 제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제 아이는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진 것 같아요. 옛날 같지 않게 엄청 예쁘게 하고 나타나요. 자신은 소원이 다른 거 없고 예뻐지고 행복하게 사는 거래요. 그러려면 돈이 너무 많이 필요하대요. 그래서 돈을 모으는 방법 같은 것, 풍차돌리기 저축 같은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요. 현재는 일반 시급 알바 이것 저것을 하고 있어요. 저도 도와주기는 할 건데 자립하는 것도 배우게 하고 싶어서 여러가지 저축 방법을 이야기 해주곤 해요.”
- “저는 그저 똑똑한 우리 아들 정도로 생각하며 아이에 대해 잘 몰랐어요. 대학 들어가서 집에서 다녀도 되는데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겠다고 해도 그 이유를 몰랐지요. 우리 아들은 여성적인 편이에요. 그런 애들이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여자애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왔어요. 그래서 저는 ‘여자애들 단속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랬죠.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걸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아들이 대학교 졸업하기 조금 직전에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나한테 문제가 있나? 우리 가족에 문제가 있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알게 되었는데, 아들이 이성애자를 짝사랑하고 있었더라고요. 걔한테 목매달아 있을 정도로요. 저는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몰랐어요.
그렇게 몰라서 줬던 상처가 많았어요. 혼자 힘들었겠구나. 혼자 그렇게 되뇌면서 울고 그랬어요. 순간순간 했던 말들을 생각하며 내가 말로 칼을 던진 거 아닌가 자책했어요. 나도 상처 받았겠지만 우리 아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며 더 많이 울었어요.
여러분들은 부모님들이 이해를 못한다고 하지만 부모님들이 무지해서 그래요. 0.1%라도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에 목숨을 걸게 돼요. 그러다 친구사이의 부모 모임에 나가면서, 거기서 만난 아이들 행동이나 제스처가 우리 아들이랑 똑같은 거예요. 그런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전 몰랐던 3, 4년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막막하면서도 아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도 하며 아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가줬는데, 마음이 정말 편해졌어요. 그러다 아들이 애인이 생겼어요. 그리고 제가 그 애인을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줬죠. 제가 생각해도 잘 한 것 같아요. 저는 그 애인이 너무 고마워요. 제 아들의 안정을 찾아줬거든요. 아들도 ‘다른 엄마들은 다 반대하는데 우리 엄마만 지지해준다’ 그것에 대해서 든든해 해요. 사회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죠. 단 한 사람의 지지자 그게 너무나 필요하다는 걸 부모님들이 알고 있어야 해요. 이런 정보도 좀더 많이 알려져야 하고요. 부모들이 무지한 거는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도 한가지 말하고 싶은 건 내 자식이 어디 가서 손해 볼까 봐 걱정하는 거지 괴롭히려고 걱정하는 게 아니에요.”
- “아이도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기까지 고민하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부모도 오래 걸리죠. 아이를 진짜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7, 8년 걸렸어요. 그런데 트랜스젠더는 수술로 몸을 바꾸는 건데, 그 힘든 과정을 평생을 같이 지켜봐야 하고 그 시간이 굉장히 길다는 것이 지쳐요. 아 진짜 지긋지긋하다 싶죠. 10년 넘게 수술하고 후유증이 생기고 재수술을 하고. 매일매일 지치는데, 매일매일 강해져요. 끝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끝까지 아이를 지켜보면서 같이 갈 수 있으면 아이 인생도 내 인생도 해피엔딩이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이야기주제 4. 아버지들은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 “아이 아빠에게 우리 애가 동성애자래 하고 말하니, 멍하니 이게 무슨 소리지 하는가 싶더니 그냥 자는 거예요. 그 모습 보면서 굉장히 속상하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일어나서 엎드려서 울어요. 그래서 감동을 받았어요. 제가 남편을 안아줬어요. 그런데 대가 끊어졌다며 우는 거예요. 남편이 나빠서가 아니라 여자하고 남자는 참 달라요. 남편은 장손이고, 순간적으로 그렇게 말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저도 표현력이 부족하고 남편도 부족하죠. 남편은 아직도 불쑥불쑥 잠을 못자요. 그래서 지금은 친구사이 부모 모임에 나가서 모임에 있었던 내용을 다 이야기 해주고 있어요. 누나에게도 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죠. 그러면 ‘그래?’하며 열심히 들어요.”
- “각자 성향은 다 다를 텐데, 제 남편은 회피성이 있어요. 어떤 아버지는 자살바위에 끌고 가기도 했대요. 여기서 너 죽고 나 죽자는 거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얘가 생각이 바뀌겠지’ 이렇게 생각 하는 거에요.”
이야기주제 5. 이렇게 커밍아웃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 “이런 단계(처음 시작 때 이야기 한 해외 번역 자료)를 보여주면서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 좋아요. 왜냐면 정보가 너무 없다 보니 인터넷에도 동성애를 검색하면, 이상하게 혐오적으로 씌여져 있는 것을 보게 되기 쉽거든요.”
-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를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해요. 법륜스님 즉문즉답 중에 동성애 관련된 것도 있는데 그 즉문즉답도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 “서로 상태가 좋고 감정적이지 않을 때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이야기주제 6. 이 외에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 주세요.
“커밍아웃 한지 4년 지났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여전히 조금씩은 이 문제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엄마도 뭘 말해야 할지 몰라요. 엄마도 생각이 너무 많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도 하고요. 그러니 엄마도 이야기를 못 꺼내는 거예요.”
“부모님들을 게이 코러스 합창단에 초대했는데 울다가 내려가셨어요. 아직까지 저희 부모님께서는 죄책감에 시달리세요. 내가 뭐라도 더 던져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좋을까 그래서 더 가까워지는 것이 좋을까 아직도 고민이 돼요.”
“다른 사람들이 동성애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 “죄 안 짓고 살아온 사람 없다. 누가 누굴 단죄하냐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