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14차 정기모임 대화록
2016-05-12 오후 20:30:41
성소수자 부모모임 열네 번째 정기모임 대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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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5월 9일 토요일 7시
 
장소: 서울 마포구 동인련 사무실
 
참석: 
-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하늘엄마: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산지기: 게이 아들을 둔 아버지
- 하나엄마: 레즈비언 딸은 둔 어머니
- 하나 언니: 레즈비언 동생을 둔 언니
- 오소리: 양성애자(가족이 전혀 모름)
- 수환: 게이(부모님과 누나들이 알고 있음)
- 하나: 레즈비언(부모님과 언니가 알고 있음)
- 어나더: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doz: 양성애자(가족이 전혀 모름)
- 희락: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수환: 성소수자 부모모임 열네 번째 모임입니다. 오늘도 이전 모임과 마찬가지로 자기소개와 지난 한달 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나누면서 시작할까요. 
 
오소리: 저는 오소리라고 하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중입니다. 부모모임에는 1월부터 참여하고 있습니다. 스물 여섯 살이고 이번 2월에 졸업해서 직업이 없는 상태예요. 게이이고 부모님에겐 커밍아웃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부모모임에 저희 어머니를 데려오는 게 꿈입니다. 지난 한달 간 열심히 인권단체에서 활동 했어요.
 
희락: 저는 희락이라고 하고 스물 한 살입니다. 지금 한 달 동안 감기 때문에 많이 아파서 고생을 했어요. 부모님에겐 얼마 전에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두세 달 정도 됐어요. 그 중간에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고, 한번 여기 와서 부모님들과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
 
산지기: 지금 한창 힘든 시기일 것 같아요.
 
희락: 저는 압축해서 겪은 것 같아요. 한달 간은 지옥 같았어요. 그런데 그런 과정이 빨리 끝나고 정상화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성정체성 때문에는 부모님이 아무렇지 않아 하시는 상태예요. 
 
산지기: 부모님은 편해지신 것 같아요?
 
희락: 농담도 하세요. 나가서 남자 조심하라고. 
 
어나더: 저는 스물 한 살 게이이고요, 재작년 6월부터 네이버에서 퀴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올해 초부터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한 건 재작년이에요. 지금은 덮어둔 상태예요. 원래 갈등이 많았던 사이라 갈등이 더 깊어졌어요. 부모모임엔 오늘 처음 왔어요. 그동안 학교랑 알바 때문에 시간이 안돼서 못 왔어요. 다른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산지기: 이전부터 있던 갈등은 어떤 거예요?
 
어나더: 제가 재수를 했어요. 첫째다보니 부모님의 기대를 많이 받았는데 기대만큼 하지 못해서 다툼이 많았어요. 성적이 좋지 않은 게 제가 게이이기 때문에, 그런 블로그를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하셔서. 동생은 두 명 있어요. 지난 한달 간은 대학생이라 중간고사 때문에 바쁘게 지냈어요.
 
수환: 저는 27살 이고요. 4년 전에 부모님에게 아웃팅을 당하면서 부모님과 누나들과 갈등이 많았어요. 어제는 거의 3년 반만에 큰누나에게 사과 문자가 왔어요. 답장은 안 했어요. 
 
산지기: 저는 수환이 아버지입니다. 위에 딸이 둘 있고 셋째가 수환이에요.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할지 서울 올라오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답이 간단하더라구요. ‘할 이야기가 없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마음 속에 토해낼 게 많은데, 저도 한 반 년 정도 오다 보니까 이 자리의 치료 효과가 엄청난 것 같아요. 목표는, 저는 매달 부산에서 올라오는데 이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부분에 부모들이 활동을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호모포비아들에게 대응하기보다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운동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여름에 몸이 많이 안 좋았었는데, 여생동안 여기 있는 분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활동하고 싶어요. 지난 한 달 동안은 농사만 열심히 지었어요. 
 
하나: 저는 하나라고 하고요, 오랜만에 왔어요. 여성 동성애자이고, 오늘은 어머니랑 언니 모시고 왔어요. 요즘 일이 워낙 힘들어서 일하고 집에서 자는 것 밖에 안 해요. 세월호 때문에도 정신이 없고. 어제도 세월호 유가족 한 분이 돌아가셔서 분향소 갔다 왔어요. 제가 소수자여서 그런지 세상의 소수자들에게 공감이 많이 가면서 아픔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하늘엄마: 저희 아들은 나이가 서른 셋이고, 이 모임에 온 건 두 번째예요. 여기 오기 전에는 친구사이라고 동성애자 모임이 있는데 그곳 가족모임에 삼년 전부터 갔어요. 사실 처음에 그 가족모임에 갈 때는 우리 아들이 이성애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1% 가능성을 아직까지 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 가서 다른 게이들을 보니까 우리 아들이랑 행동이 다 너무 비슷하더라구요. 의사, 상담사, 전문가라는 사람을 몇년 찾아다녔는데 그게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친구사이에서 같이 밥먹고 대화 나누고 하다 보니까 ‘아 이거는 타고나는 거구나’, 전환치료는 있을 수가 없다는 걸 안거죠. 거기를 가면서 마음이 참 편해졌어요. 제가 1% 그걸 쥐고 있었거든요. 그걸 놨어요. 정말로 온전히 아들을 받아들이는 거죠. 그 전까지는 우리 아들이 상처 받을까봐 받아들인 척 연기를 하고 아들 안보는데서는 ‘어떻게 바꿔볼까’ 궁리를 했는데 혼자 끙끙대니 제가 얼마나 우울했곘어요. 혼자 있어도 아무 것도 하기 싫더라구요. 
 지금은 가장 편안한 시기에요. 얼마 전에 어버이날 즈음에 휴일이라고 아들이 오겠다고 했는데 휴일인데도 일이 늦게 끝나서 제가 음식을 싸들고 아들이랑 파트너 같이 사는 곳에 오랜만에 갔어요. 생각보다 깨끗하게 살고 있더라구요. 먹을 거 주고. 엄마 주려고 선물 준 거 받아오고. 어버이날이라고 문자 보내주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내주더라구요. 지금 안지가 10년 정도 됐어요. 
 저희 아파트 바로 윗집에 나이 많은 노인 두 분이 사세요. 며칠 전에 윗 집에서 뭔가가 우당탕 하더니 젊은 사람이 소리 지르는 소리가 나요. 근데 소리가 심각하더라구요. 여자 소리지르는 소리가 나서 딸인지 며느린지 노인들 쇼크 먹으면 넘어가니까 걱정이 되어서 올라가봤더니 집안에 문제가 있나 봐요. 그걸 보니까 제가 6, 7년동안 아들이 동성애자여서 가슴앓이를 했는데, 사실 우리 아들이 뭔가 잘못을 한 게 아니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파트너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을 때의 갈등,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시기의 고통, 근데 그게 잘못이 아니고 누구를 해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데, 윗집에서 싸우는 걸 보니까 그게 힘든 거지 우리 아들이 동성애자인 건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누구에게 비난 받을 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인: 저는 작년 1월부터 나왔고, 재작년에 알았어요. 애 문자를 봐서 알게 됐어요. 지금은 대학생인데 그 당시엔 고등학생이어서 “너가 아직은 어려서 모르는 거다”고, 걔는 이미 다 정립된 후였는데, 제가 뭘 안다고 넌 아니라고 그러고 싸웠어요. 나중에 애한테 상처 되는 말을 많이 했었고, 혐오스럽게 여기면 생각을 바꿀 것 같아서 그런 말도 했어요. 충격-분노-부정-죄책감 그 단계 그대로 따라갔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어릴적부터 온갖 일들이 다 생각나고 매일 울었어요. 그래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작년 1월에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전화해서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부모님들 좀 만날 수 있냐고.. 그래서 처음 다른 부모님들을 만났는데, 그때 위로가 얼마나 됐는지, 1년 동안 괴로웠던게 다 풀렸어요. 그 다음부터 여기 오면 편해져서 계속 오게 된 거예요.
 처음엔 ‘내가 뭘 잘못해서 얘가 동성애자가 된 게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걸 알아서 다른 죄책감만 남았어요. 뭐냐면 내가 엄만데, 애가 그렇게 혼자 힘들었는데도 몰랐던 거, 그리고 안 다음에 상처줬던 거. 그 죄책감만 남았어요. 작년에 이 모임에도 나오고 퀴어문화축제도 가고 그러면서 아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사회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 아이가 아니라 사회에 문제가 있는 거니까. 그럼 오히려 엄마로서 할 일이 있겠다. 근데 사실 저는 아직 아들이랑 사이가 좋아지지 않았어요. 형이 있는데 형은 생각이 미국식이어서 소식을 듣자마자 많이 도와줬어요. ‘바비를 위한 기도’라는 영화도 알려주고 글도 읽게 하고. 
 
산지기: 이제 죄책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아요?
 
지인: 네. 지금은 편지를 어떻게 써야 얘가 마음을 열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
 
산지기: 며칠 전이 어린이날이었잖아요? 저는 손주가 세살 짜리랑, 네살 짜리가 있는데 마당에 트램펄린을 사줘서 둘이서 뛰면서 놀다가 이마를 꽝 박았어요. 근데 예전에 수환이가 피아노 의자에서 떨어져서 이마에 혹이 난 적이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게이가 됐나 하는 생각을 예전에 했었는데, 그게 생각이 나서 손자를 꼭 안아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죠.
 
하나엄마: 저는 우리 하나를 보면 너무너무 좋아요. 쟤는 어릴 때부터 너무 기쁨을 많이 줬어요. 어떤 말을 해도 다 사랑스럽지만 가끔은 걱정이 앞서기도 해요. 그래도 그거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이 깊으니까, 그래도 내 딸이 사랑스러운데, 이쁜데, 하면서 위로를 많이 하구요. 아까 애들 잘못이 아니라고도 하셨는데, 하나님이 내게 저 아이를 주셨구나. 지금은 그런 고민이 있어요. 어차피 바뀔 일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 수 있을까. 하나님 나에게 주셨으니까 어떤 마음으로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애가 커밍아웃을 했을 땐 안 믿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교회를 다니니까 교회에 오게 하려고 며칠을 괴롭히다가 그래도 쟤를 더 이뻐하니까 마음을 바꿨거든요. 제일 고민이 무엇이냐면 쟤가 어떻게 살 것인지, 그게 제일 고민이더라구요. 지금은 스스로 잘 살아가니까 걱정이 덜하지만 처음엔 많이 걱정했어요.
 
하나: 처음 엄마에게 커밍아웃한 계기는 욱하는 성질에, 엄마가 절 다 안다는거예요. 그래서 “정말? 나에 대해 다 알아? 나 동성애자야!” 했어요. 그리곤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첫날엔 웃으면서 가셨어요.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그래서 처음엔 괜찮은줄 알았어요. 근데 그 다음날부터 새벽마다 “악을 진멸해라” 같은 문자를 보내시는 거예요. 새벽예배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말이에요. 날 낳아주신 분이 내 존재를 부정하시니까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해 추석때 안 내려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아빠한테 얘기한다는 거예요. 지금도 아빠가 너무 무섭거든요. “그래 그럼 말해. 다 끊고 살테니까 나한테 연락하지마.”라고 말했어요. 동성애자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항상 외톨이였어요. 그것도 강원도라는 산골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던 사람도 없었고, 유치원때부터 레즈비언인 걸 알았는데, 그런 성장과정을 아무도 몰라요. ‘그것이 알고싶다’에 에이즈 그런 거로만 동성애자라는 단어를 듣고. 그래서 아버지한테 말하라고 할때는, 나는 가족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차라리 잘 됐다. 내쫓기면 그렇게 살지. 근데 언니가 중간에서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언니가 아빠 동태를 살핀 거예요. 제가 추석 때 내려가도 될지. 근데 언니가 와도 될 것 같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하나가 행복했면 그걸로 된다’ 라고 하셨다면서. 그때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있었는데 애인이 갔다 오라고 하더라구요. 그 후로도 계속 커밍아웃은 계속되고 있어요. 전에도 커밍아웃을 했지만 안 들은 것처럼 하시니까.
 
하나엄마: 맞아요. 그냥 예전의 내 딸인 것처럼. 잊어버린 것 처럼. 정말로 그런 건 머리 아프니까요. 그냥 보면 예쁜데.
 
하나: 오늘 조금 있다 애인이 오기로 했는데, 엄마랑 언니를 처음 만나는 거라 좀 떨려요.
 
하나엄마: 우리 딸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지만, 이게 정말로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고 그래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근데 내 딸인 걸 어떡해요. 보기만 해도 좋은 내 딸인데. 
 
하나: 전에는 벽장에 있었는데 지금애인을 만나 많이 변했어요. 처음 사귀기로 한날 데이트를 하는데 애인이 길에서 손을 잡는 거예요. 얼마나 떨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였는지 몰라요. 그리고 어딜 가나 혐오세력들이 “니네 엄마가 알아?” 하는데 “우리 엄마가 알아! 우리 엄마가 나 지지해줘!” 하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전에 엄마가 전화하는데 “하나야. 다 좋은데 사랑은 쿨하게 해!” 하는 거예요. 예전에는 자존감이 없으니 애인한테 끌려 다니고 그랬는데 지금은 훨씬 더 행복해요.
 
지인: 어머니에게 커밍아웃 한 게 언제예요?
 
하나: 재작년 8월이에요.
 
하나엄마: 전 그전까진 전혀 몰랐어요.
 
지인: 저도 전혀 몰랐어요.
 
희락: 저도 평생 힌트를 남겼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셨더라구요.
 
산지기: 저도 돌이켜보면 수환이도 끊임없이 힌트를 남겼더라구요.
 
하나: 집에 핑클 사진이 도배가 돼 있었는데! (웃음)
 
하나엄마: 그러기도 하고 대학 가면서 떨어지니까 더 모르죠. 전에 하나가 고등학생 때 친구랑 같이 집을 나간다고 그랬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몰랐어요. 그냥 “좀 있으면 대학 가야하는데 뭘 나가냐” 했죠. 하나가 커밍아웃하고 나서 돌이켜서 생각해보니까 그런거더라구요. 당시엔 ‘어떻게 하면 되돌리지’, ‘어떻게 하면 바로잡지’ 했는데, 얘는 엄청 싫어하더라구요. 그래서 그건 안하는데 슬퍼요. 속상하고. 그래도 우리 딸이 이쁘고 그러니까.. 
 
지인: 우리가 생각해야하는게, 지금 동성애자냐 트랜스젠더냐가 문제가 아니고, 청소년 성소수자 자살 시도율이 47%나 되고, 작년 1년 동안 자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비율이 70%나 돼요. 
 
하나엄마: 그래서 저도 “니네가 잘 살아야 한다”, “힘든 청소년들 도와줘야 할 것 아니냐”, 그래서 열심히 벌라고 해요. 
 
지인: 애를 안 낳으니까 풍족하게 잘 살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늘엄마: 애를 낳으면 자식한테 메여서 사니까.
 
하나엄마: 쟤가 잘 살기보다는 하나 같은 고민을 하는 애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 애들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인: 하나씨 언니 분은 전엔 모르셨어요?
 
하나언니: 저도 몰랐어요. 전에 어쩌다가 컴퓨터에 뭐 저장해 놓은걸 봤는데, 동생한텐 말을 안 했어요.
 
하나: 전에 하루는 자고 있는데 언니가 엄청 진지하게 “컴퓨터에 뭐 저장해 놓은걸 봤는데 너 혹시 그런 사람이니?” 하고 묻는 거예요. 두달인가를 혼자 울었대요. 그랬는데 저는 대전에 있고 언니는 서울에 가니까 짧게 만나고 만거죠. 
 
하나엄마: (하나언니를 가리키며) 얘는 그때 알았는데 저한테 요만큼도 애기 안 했어요. 
 
하나 언니: 전 그것도 까먹었어요. 그랬었는지. 지금은 동생이니까,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도움이 되려고 노력도 하고. 누가 힘들게 살고 싶어하겠어요. 선택한 게 아니니까 가족으로써 지지해주고. 동생으로서, 가족으로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도 밖에서 게이 레즈비언 욕하는 거 들으면 “우리 동생도 레즈비언이거든?” 하고 싶은 때도 있어요. 사람들이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편견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게 가족으로서 안쓰럽지만, 다행히 씩씩하게 주눅 안 들고 있어서 좋아요. 
 
하나엄마: 이뻐요.
 
지인: 성경 얘기를 하셔서, 제가 좀 너무 이 영화 추종자 같은데, ‘바비를 위한 기도’가 참 좋아요. 실화인데 엄마가 계속 성경 이야기를 하면서 받아들이질 못하니까 아이가 자살을 해요. 영화를 보면서 ‘난 저 엄마보다 더 심하게 했는데’하는 생각을 하니까 정신이 확 들더라구요.
 
하나엄마: 지금은 막 찾다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니까, 교회를 가도 왜 교회를 가는지, 성경을 왜 보는지도 모르겠고... 나도 지금 나를 못 찾겠어요. 내가 먼저 서야 애를 돌볼텐데, 어떻게 이겨낼지, 예전처럼 씩씩해질지. 그런 게 고민이에요.
 
지인: 왜 애들이 커밍아웃을 하려고 할까 계속 생각했는데, 이제 저도 사람들 보면 말하고 싶은 단계가 됐어요. 
 
산지기: 저도 말하고 싶은데 참느라 혼나고 있어요. 아들 눈치만 보고 있어요.
 
하나엄마: 왜 주변에 알리지 못하게 해요?
 
하나: 일단 친척들이 알게 되는게 부끄러워요. 정확히 날 아는게 아니라 연락도 잘 안하고 사는 사람들인데 딱 던져 놓기만 하고 자기들끼리 내 얘기를 하게 될 테니까..
 
하나엄마: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꺼니 너? (모두 웃음)
 
doz: 저는 중3이고, 초등학교 6학년때 양성애자인 걸 알았어요. 아직 확립된건 아닌 것 같아요. 처음 이런 곳에 나와보는 거예요. 중1때 레즈비언인 친구가 있었는데 걔가 저한테 너 혹시 레즈비언이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땐 아니라고 했어요. 저희 언니는 알고 있는 것 같고, 엄마한테도 동성애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고 그랬는데 아직은 모르시는 것 같아요. 
 
하나엄마: (하나에게) 너는 양성애자는 아니니?
 
하나: 나는 한 번도 남자를 좋아해본 적이 없어.
 
doz: 엄마한테 양성애자라고 말하면 그냥 남자 잡아서 결혼하라고 할 것 같아서 그렇겐 말 안 할 생각이에요.
 
곰: 42살입니다. 이성애자예요. 결혼해서 아이가 한 명 있고, 출판사 하고 있어요. 십 년 넘게 하고 있어요. 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만화를 통해 하고 있고, 한겨레 쪽에 연재도 하고 있어요. 딕쏘라는 게이 데이팅 어플에 만화도 그렸고, 인권운동 하는 분 인터뷰해서 만화를 그렸어요. 저는 어릴적부터 보수적인 기독교 배경에서 성장해와서, 혐오감 같은걸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외향상은 주변 사람들이 진보적인 성향이 있어서 도매급으로 넘어가지만.. 제가 만화를 그려야하기 때문에 배우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이 문제에 대해서.. 문제라기 보다 사실 제가 문제인 거죠.
 
하나엄마: 그럼요.
 
곰: 저는 기독교는 아닙니다. 집안 전체가 기독교여서 그렇지. 이해를 해 가고 있는 중이에요. 다르다는 게 차별로 가는 건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딸을 낳았는데, 동성애자일 수도 있죠. 문제는 사회에서는 주변에 안 보이기 때문에 멀찍이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 같아요.
 
지인: 제가 하나 알게 된게 뭐냐면,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가, 특히 이성애자 남자들이 동성끼리 성행위하는 경우가 정말 많대요. 우리가 헷갈리면 안되는데, 이성애자의 30%가 동성끼리 성행위한 경험이 있어요. 문제는 성행위 해봤다고 해서 이성애자가 동성애자 되지 않아요. 교도소에서 남자끼리 몇년동안 했던 사람도.
 
 
(휴식) 
(이경 도착)
 
- 2부 -
 
 
 
이경: 저는 곽이경이라고 합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이고 작년과 올해는 다른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노동조합에서 연대를 열심히 하는 일을 하는데 맡고 있어서 최근 한달 간은 세월호와 총파업 준비에 다 쏟았어요. 힘든 한달이긴 했는데, 기억에 많이 남는 한달이기도 했어요. 세월호 희생자 가족 한 분이 며칠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제 안산에 내려갔는데, 단원고 희생 학생 부모님들이 어버이날인데 아들 딸이 없잖아요. 그래서 단원고 학생들이 와서 편지도 읽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자리도 가졌어요. 한달 동안 힘들었지만 다음 한 달도 더 힘들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한테도 잘 효도했고, 오늘은 사실 오면서 긴장이 돼서 밥도 못 먹고 시름시름 앓다가 왔어요. 저하고 2년 가까이 잘 지내고 있는 파트너의 어머니와 언니를 처음 뵈러 왔는데, 생각보다 절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아유 예뻐라” 해주셔서 너무 좋았고, 장모님인지 시어머닌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합니다. (웃음)
 
하나엄마: 우리 애 아빠도 딸이 하나 더 생겼다 생각하고 있어요. “딸 하나 더 생겨서 좋지 뭐, 근데 누가 밥을 하지?” 하고. (웃음)
 
지인: 따님이 의지가 많이 되고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애도 의지가 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하늘엄마: 여성 커플이어서 살림은 더 잘하지 않을까..
 
하나엄마: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 웃음)
 
수환: 희락씨 커밍아웃 이야기도 좀 더 듣고 싶어요.
 
희락: 욱해서 한 것 같긴 해요. 어머니랑 싸우다가. 게이라고 말했을 때 어머니가 못 받아들이시더라구요. 겪은 과정은 평범한 것 같아요. 난리 났었고, 아버지한테 말하겠다고 난리를 치시더라구요. 엄마보다는 아빠가 더 미더웠는데 뒷통수를 맞았어요. 아빠가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대요. 갈 곳이 없었어요. 집안에 있는데 집 안에 제 장소가 없어요. 부모님들도 다 제 편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이야기만 나오면 싸운 것 같아요. 한달동안 매일 세시간 이상씩 싸웠어요. 싸울때마다 울고. 힘든곳까지 가고. 그렇게 힘들어질줄 몰랐어요. 특히 외국 동영상 보면 부모님이 잘 받아들이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제야 알았어요. 왜 그런 동영상이 유명한지. 이상적인거니까. 판타지인거죠. ‘우리 부모님이 받아들여주시겠지’, ‘모를 리가 없어’ 했던게 거짓이라는 것도 알고. 제가 알았던 세계가 무너져버린거죠. 정말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우울증을 많이 겪었어요. 우울증인줄 몰랐어요.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하고 나서 알았어요. 고3 4월에 자퇴를 했는데 학교에 앉아있으면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은거예요. 왜 여기서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지 이해가 안 돼서. 고3 되면서 압박이라던가 그런게 몰려와서 우울증 때문에 자퇴를 했는데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하고 나서 그 우울증이 다시 왔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 그 상황이 아직까지도 흉터로 남은 것 같아요. 다행히 지금은 커밍아웃한지가 2개월 지났는데 좀 나아진 것 같아요. 부모님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건 제가 게이로 사는 이야기로 유튜브를 하는데 어머니랑 그거 때문에 갈등이 많았어요. 6월이 되면 시작한지 1년이 되요. 그만큼 거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 건데, 부모님이 다른 건 상관없는데 왜 얼굴을 밝히냐, 하시는거예요. 저희 부모님 두분이 다 목사님인데, 너 우리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거냐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저도 크리스챤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버릴 의향이 없어요. 처음 유튜브에 비디오를 올렸을 때 부모님을 망하게 하려는 의도는 정말 없었고,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도 했어요. 제가 뱃속에 있을때부터 어머니가 하신 일인데, 그리고 어머니가 하는 일에서 영감도 많이 받았는데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게이라는걸 밝힌 것 때문에 부모님한테 피해가 되고 실제로 저희 가정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게 상황이 슬픈 거예요. 그것 때문에 가슴앓이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걸 분명히 아는데, 오히려 사랑하니까 그러시는 걸 분명히 아는데, 그런 말을 용서하기가 힘들었어요.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니까 저는 그런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야하고. 그런 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부모님이 끝까지 저를 이해해주시고, 그런 점에서 감사하거든요. 정말 마음을 먹으셨으면 제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해해주시니까 고맙고. 지금은 이렇게 나아진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지인: 부모들은 처음에는 "얼마나 더 심한 말을 해야 애가 마음을 바꿀까?" 하고 생각해요. 사랑하는만큼 더 심한 말을 하게 돼요. 처음에는 아이 입장에서 말하는게 아니라 본인이 힘드니까 자기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요. 부모가 자기 힘든 것만. 그게 시간이 걸려요. 기다리셔야해요. 
 
산지기: 그래도 마지막에 남는 영원한 내편은 부모님이에요. 그건 믿으세요.
 
지인: 우리 애한테 자신감 있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하나엄마: 목사님 부모님이 이 모임에 오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교회다니니까. 저도 교회 다니지만 우리 목사님한테 그런 말 못하거든요. 서로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아요.
 
하늘 엄마: 제 친구가 교회를 열심히 다녀요. 그 친구는 결혼을 안하고 선교사로 아프리카에도 다니고 그래요. 그 친구가 5년에 한번씩 오면 친한 친구 셋이서 만나서 밥을 먹었어요. 얼마 전에도 셋이서 밥을 먹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너희는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난데없이 그렇게 묻더라구요. 갑자기 묻는데, 우리 애가 도마위에 오르고 그런건 싫어서 이야기는 안하고, 그냥 “편견이 나쁜 것이고 나는 동성애를 옹호한다”고 말했어요. 다른 한 친구는 기독교인은 아닌데 “난 잘 모르겠어~” 하더라구요. 근데 교회 열심히 다니는 그 친구는 “동성애는 간음보다 더 나쁜 거야”라고 하는 거예요. 그 친구가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그래서 참 좋게 봤는데 종교가 참 걸림돌이 되더라구요. 우리 나라에 종교관이 어떤가, 우리 나라 교회가 잘 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카톨릭 신자인데, 저희 아들이 게이인걸 알았을 때, 성당에 가서 매일 울었어요. 저도 성당에서 어지간한 봉사 많이 했는데 지금은 잘 안 나가요. 지금 돌아보면 ‘난 발바닥 신자였다’, ‘교만했다’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성당은 잘 안가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해요. 
 
산지기: 아드님 파트너는 어때요?
 
하늘 엄마: 우리 아들이 방황하고 그럴 때 제가 무의식 속에 ‘애가 자살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 아이 파트너 생긴지 4년 됐는데 우리 아들 파트너가 아들보다 나아요. 이건 인정을 해야해요. 맨날 하는 말이 “너 형 말 잘 들어.” 이래요. 
 
산지기: (하나엄마에게) 이경 생일이 언제인지 알아두셔야겠어요.
 
하나엄마: 그러게요. (웃음)
 
어나더: 오늘 처음 왔는데 저는 사정이 복잡해서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해요. 부모님과 갈등이 계속 심해서 애착이 크지 않아요. 어버이날이어서 감사하기도 한데 감사하기 전에 반발심이 먼저 나오니까 안타까운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현재진행형이다보니까.. 사실 요즘 외박도 안 돼요. 어떤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지 모른다고.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좋은 부모님들도 참 많고 내가 부모님과 좋은 유대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인: 근데 마찰이 있으면 안돼요. 저희 애도, 솔직히 제가 잘못했지만 얘가 학교도 안가고 밥도 안 먹고 저한테 처음으로 심한 이야기를 해서 저도 화가 난거라....
 
어나더: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그러세요. “넌 나이가 들수록 점점 한심해진다”고.
 
하나엄마: 물론 자식이 미울때도 있죠. 근데 그 속에서는 사랑이 있어요. 그 밑에 있는 엄마의 사랑을 생각을 해서, 엄마가 더 다가올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계속 멀어지면 계속 평행선인거예요. 엄마가 안 다가오면 내가 조금 더 다가가는게 좋지, 반발심이 생겨서 나가게 되면, 정말로 부모자식간이라도 웬수처럼 사는 사람 많아요. 저도 사랑이 없었다면 여기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태어났을때 참 예뻤는데 지금 저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도 내 딸인데, 속상해도 먼저 다가가야죠. 
 
산지기: 여기 어머니들이 강요하시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 저는 오히려 부모 자식간에 이해의 폭이 안 맞으면 바닥에 있는 사랑을 믿고 좀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