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열여덟 번째 정기모임 대화록
일시: 9월 12일 토요일 4시
장소: 서울 마포구
참석:
-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하늘엄마: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무애: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해인: 게이 조카를 둔 이모
- 라라: MTF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어머니
- 지렁이 어머니: FTM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어머니
- 지렁이: FTM 트랜스젠더 (부모님이 알고 있음)
- 나미: FTM 트랜스 남성 자녀를 둔 어머니 (제이미 어머니)
- 제이미: FTM 트랜스 남성 (부모님이 알고 있음)
- 지기: 레즈비언(여동생만 알고 있음, 커밍아웃은 안했는데 부모님이 알고 있는 것 같음)
- 빼꼼: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문이채린: 레즈비언(부모님과 여동생이 알고 있음)
- 주디: 레즈비언(부모님이 알고 있음)
- 오소리: 양성애자(누나만 알고 있음)
- 모리: 게이(부모님과 누나들이 알고 있음)
- 바람: 게이(부모님과 형이 알고 있음)
- 어나더: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박훈: 게이(어머니가 알고 있음)
- 마루: 게이(커밍아웃은 안했는데 남동생이 알고 있는 것 같음, 부모님은 전혀 모름)
- 게스: 게이(커밍아웃은 안했는데 가족이 알고 있는 것 같음)
- 백순재: 게이(어머니만 알고 있음)
- 창현: 게이(커밍아웃은 안했는데 어머니가 알고 있는 것 같음)
- 재성: 게이(가족이 전혀 모름)
어나더: 자기소개 시작할게요. 저는 스물 한살 어나더미 입니다. 대학생이고요. 작년 8월에 커밍아웃 했어요. 부모님 반응이 그렇게 좋지 앟으셨어요. 5월달에 처음 부모모임에 참여했는데, 다른 부모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내가 어떻게 소통하면 풀어나갈 수 있을지 몰라서 참여하였습니다. 근황은 개강을 저번 주에 했고요. 부모님과 갈등이 너무 심해서 본가에서 고시원으로 이사했어요. 재밌게 잘 살고 있고 학교 일로 바쁘고 원래 하고 있었던 일을 11월까지 준비해야 해서 바쁜 상황입니다.
무애: 저는 17살 게이 엄마고 우리 아들은 작년 한 10월 정도에 커밍아웃 했어요. 도대체 이게 뭔가 알아보려고 모임에 참석하게 됐어요. 참석하고 3개월 됐는데 마음이 편해졌어요. 혼자 자조하고 위안 삼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이게 어떤 문제인가, 왜 사회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근황은 우리 아이가 검정고시를 합격해서 너무 기뻤고 공부를 너무 싫어해서 미술쪽으로 가기로 했어요. 저는 너무 편안하고 갈등이 없고요. 앞으로 성소수자 모임에서 부모모임의 한 자리에 앉아서 제가 하고자 하는 내 일과 역할을 목표로 삼고 있는 엄마입니다.
지기: 저는 이번에 부모모임에 처음 나왔고, 대학교를 올해 2월에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회사에는 커밍아웃을 했고 가족 중에는 여동생만 알고 있고 부모님은 모른다기보다는 저에게 대놓고 물어보셨는데 어떻게 애기해야할지 몰라서 커밍아웃을 못한 상태에요.
지렁이 어머니: 저는 60세고 딸이 진짜 이쁜 딸이었는데, 아들 둘이 있는데 얘가 남자가 되고 싶대요. 저는 알고 있었는데 5월 13일날 교통사고가 나면서 응급실에서 복용하는 약을 물어보면서 아버지가 알게 되면서 전쟁이죠. 두 사람 정신병원에 가라고 하면서. 오빠들은 이해를 하더라구요. 저는 솔직히 단어도 잘 모르겠고. 그냥 이걸 데리고 같이 한강을 갈까 하기도 하고. 그러다 둘이 쫓겨났어요. 둘이서 작은 집에서 재밌게 살고 있어요. (호르몬)주사만 좀 안 맞았으면 좋겠는데. 도움이 되려면 뭔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나왔습니다.
지렁이: 저는 이 아주머니가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들이구요. 저는 원래 호르몬을 하고 있었는데 보험사 합의 때문에. 제가 다친 곳이 골반이거든요. 그래서 합의금을 받으려면 호르몬을 중단해야 해서 약 없이 버티고 있고 지금은 취업 준비중입니다.
하늘엄마: 한 7년 전에 아들이 커밍아웃했고요. 아들은 지금 파트너와 잘 살고 있고 지금은 많이 편안합니다.
해인: 무애님 자녀분의 이모에요. 제 아이가 성소수자는 아니고 조카 때문에 왔는데 지금은 여기 와서 배우는게 너무 많고 분명히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근황은 중간중간에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를 한편씩 봐요. 어제는 쇼를 사랑한 남자를 봤어요.
빼꼼: 대구에 살고 있고 나이는 23살이고. 제 경우엔 저번주 일요일에 JTBC에서 인터뷰를 헀어요. 저는 작년 5월에 같이 일하는 동료에 의해서 아웃팅을 당했고 사장이 우리 가게에선 동성애자와 일할 수 없다 나가라 하면서 5개월 간 임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고요. 올해 1월에 사장 아들이 저희 집에 찾아와서 아웃팅을 해서 쫓겨났어요. 엄마가 교회 사람들에게 의뢰해서 감금하고 납치하고 병원에 가서 전환치료 를 강요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너무 답답해서 제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하다가 지인님과 꾸준히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게 됐습니다. 요즘 근황은 엄마와 조금씩 관계가 나아지고 있지만 전환치료를 계속 요구중이에요. 며칠 전에는 감금이 또 일어났어요. 이틀 정도 휴대폰 뺏기고 감금되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이미: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작년 12월에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사실 자체는 잘 받아들여 주셨는데 호르몬을 맞겠다고 하니까 충돌이 있어서 어머니께서 알아봐야겠다고 하셔서 같이 오게 됐습니다.
나미: 제가 여기 와야하나 말아야하나 많이 망설였는데…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건 세 네달 됐는데 감정이 굉장히 복잡했어요. 결국은 마음이 딸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갈 때가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그런데 얘가 1, 2주 전에 호르몬 주사를 맞으려고 피 검사를 한 사실을 알고 그때는 충격이 컸어요. 왜 자기가 가진 몸 자체로 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돼서. 아니다, 혼자서 하는건 아니고 부모와 같이 가자, 하면서 갈등이 컸는데, 제가 여기 오게 된 궁극적인거는 딸을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해서예요. 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분들이, 그런 일을 겪었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서 어떻게 해야 했었다, 내가 잘했다던가 아니면 주변에서 보셨던 분들이 이건 이런 방향으로 갔어야 하는 거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결국은 지식만으론 안되는 것 같아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며, 자식이 좋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올때는 굉장히 담담했는데 얘기를 하려니까 북받치네요. 지금은 남녀로 구분되어 있는 세상이지만,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몰랐던 세상계에 대해서 현재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하는데 결국은 이 세계를 알고 이해를 하고 같이 가는게 인류의 방향이 아닐까, 그렇다면 같이 가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라라: 저는 라라구요, 저는 MTF 22살 딸을 두고 있는 엄마에요. MTF는 태어난 신체는 남자인데, 자기는 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알기 시작한건 아주 어렸을 때 부터였던 것 같아요. 남자목욕탕을 아빠를 따라서 한번도 같이 간 적이 없고, 여자 장난감, 여동생 치마를 입고 같이 놀고. 제가 알게 된건 13년도 8월에 의도치 않게 서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알게 됐어요. 그때 당시에 사귀기 시작한 남자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를 알게 되면서 동성애자구나 생각했어요. 그 전에도 예뻐지고 싶다고는 했는데 여자가 되고 싶다고는 안 했기 때문에. 쟤가 성소수자인건 분명하기 때문에 카페를 검색해서 여기 참여하게 되었고, 참여하면서 우리 아이가 트랜스젠더구나, 하고 인식을 하게 됐고, 너는 수술을 하고 싶냐 했더니 자기는 원하지만 동거하는 친구는 원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 친구는 양성애자에요. 저도 무지했지만 아이도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가기 보다 게이 친구들이랑 놀아요. 친구가 다 게이에요. 트랜스젠더인데, 여자로서 사랑을 받고 싶은데 아직 남자 몸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로서 사랑도 가능하잖아요. 근데 그 친구와 어긋나기 시작한 게 작년 8월부터 간헐적으로 호르몬을 맞고 가슴도 나오고 그랬는데 파트너가 낯선 거예요. 예전에도 머리 길었을 땐 괜찮았는데 가슴이 나오고 이러니까 머리도 짧게 자르고 귀걸이도 빼고 남자처럼 하게 다니더라구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형이 싫어한대요. 그러다 남자친구가 바람이 나서 헤어지고 자기를 누나로 대해주는 게이랑 다시 만났는데, 오랜 기간 이전 남자친구와 만났기 때문에 안 좋아져서 새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자해를 했어요. 자살 시도를 해서 보호병동으로 갔는데, 가슴이 있고 아래엔 수술을 안 했기 때문에 보호자가 24시간 보호하는 조건으로 일반 남자 병실에 같이 있는데, 성소수자에 대해 잘은 몰라도, 그 분들도 의사니까 호르몬이랑 그런걸 같이 처방을 해주시더라구요. 치료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서인지.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해서 저랑 대화를 잘 안해요. 그렇게 밝고 저랑 잘 이야기하던 애가. 그래서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은 외박을 얻은 날이에요. 방을 온통 핑크색으로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어릴때부터 한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오늘 같이 잘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랑 가평에 놀러 갔어요. 그래서 제가 오늘 자유가 생긴 거예요. 얀희병원 테드라는 사람들 글을 읽다보니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증상이 있대요. 트랜스젠더들이 대부분 애정결핍이 있고 집착이 강하고 항상 전화하고 못살게 구니까. 처음에는 자기한테 헌신적이라고 생각하다가 한 열흘만 지나면 (상대방이) 지겨워서. 그런걸 앞으로 잘 개선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얘가 또 다른 사랑을 해도 힘들겠구나.
문이채린: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문이채린입니다. 원래 이름은 문채린인데요. 어머니의 성도 쓰고 싶어서 문이채린으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저는 현재 커밍아웃한지 8년 정도 되어가는 24살 레즈비언입니다. 처음 커밍아웃하게 된 것은 17살 때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러브레터를 쓴 걸 가족들에게 들켜서였어요. 당시 여동생과 아버지께선 쿨하게 이해해주셨지만. 어머니는 처음엔 실감을 못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어린 나이기도 했으니까요. 그 후로 5년 정도 가끔씩 마찰이 있었어요. 완전한 이해와 ‘지지’를 원했던 저와 ‘간섭’하지 않으니 충분히 행복하지 않냐 시던 어머니사이에서요. 시간이 지나고 제가 스스로 돈을 벌만큼 어른이 됐을 무렵 다시 한번 진지하게 레즈비언으로서 살아온 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훗날엔 성소수자 인권 운동도 하면서 살고 싶다 말씀 드리니 그제서야 너한테 이게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구나, 어린 날의 치기로만 볼게 아니었구나. 하시면서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매우 화목한 상태입니다. 심지어는 제가 이곳 부모모임에 오게 된 계기마저 저의 어머니가 추천해주셔서 찾아오게 됐을 정도니까 너무 행복하죠.
그리고 최근 근황은... 제가 만화를 전공하는데요. 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어서 준비 중이에요.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흔히들 성소수자하면 안 좋은 이미지가 많잖아요. 혐오 뿐만 아니라 쟤들은 불쌍하다, 짜질하다 같은. 저는 그렇게 안 살았거든요. 저는 성소수자로서 너무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그런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아지길 바래요. 자살하고 자해하는 그런 이야기 말고 역경을 극복해서 성공하거나 성장하는 긍정적인 이야기로 성소수자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주디: 21살 주디입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고 있어요. 15살때 부터. 그 후로 저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어떤게 있는지 알아보려고 굉장히 공부를 많이 했어요. 자료를 받아서 잘 숨겨 놓고 있었는데 17살때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목소리가 좀 컸나봐요. 통화 내용이 이상하니까 엄마가 통화내용을 물어보시더라구요. 엄마가 대화 내용에 대해 물어보시면서 제가 계속 부정을 했는데 끝내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더라구요. 엄마는 굉장히 놀라고 당황하셔서 바로 방으로 가버리셨어요. 밤이 되어 아버지가 퇴근을 하셔서 두분이서 얘기를 하시는 느낌인거예요. 그날 밤에 아버지가 제 방에 오셔서 자기는 그런거 괜찮다고 받아들여주셨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게 더 중요하대요. 속으론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엄마와 얘기를 하는데 아버지가 물어보셨나봐요.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엄마가 말을 안하려고 하셨나봐요. 근데 아버지가 알고 계셨던 거예요. 아버지가 1년 전부터 알고 계셨던 거예요. 아버지가 이미 알고 계셨고 생각보다 관심이 더 많았구나. 눈치가 빠르고 아버지가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는 일을 하시는데, 엄마는 너와 더 많이 시간을 보냈는데도 몰랐구나.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긴 힘들고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 이건 네가 미성년이라서 그런다. 대학교에 가서 만나보면 달라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셨어요. 21살이고 대학 성소수자 모임에서 활동하는데 정체성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후로 이야기 안 했어요. 한달 전 쯤에 레즈비언 연극 스탑키스를 보러 갔어요. 엄마가 무슨 연극이냐고 물어보셔서 그냥 제목을 이야기 했는데 굳이 그걸 찾아볼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검색을 해보셨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에 몇년간에 이야기를 안 하던게 내가 말은 안했지만 엄마와 조만간 더 이야기를 하게 되겠구나 했어요. 커밍아웃은 현재 진행형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더 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나왔어요. 여동생에겐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박훈: 게이이구요. 저 같은 경우엔 고등학교때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때 다소간의 아픔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저보다 더 열정적이시고 저보다 더 제 애인이랑 이야기하는걸 더 좋아하시고. 어떤 점에선 성공적이고 축복받은 커밍아웃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선 다른 분들의 커밍아웃과는 다른 것 같아요. 퀴어로서의 삶을 살려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지인: 얼마 안 됐는데도 부모님들이 나오셔서 반성이 되네요. 저희 애는 게이이고요. 걔가 고1때 알았는데 얘가 좀 괴롭힘을 중 고등학교때 당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옮겨줬는데 자기는 미국 가야한다고. 왜 그러냐고 그랬는데 엄마가 약해서 말 못한다고 그러더라구요. 제가 게이인걸 알게되고나서, 너는 지금 어려서 몰라 이러면서 3,4일 동안 마찰이 있었어요. 처음으로 심한 말도 하고. 혐오스러운 말도 하고. 그때는 바꿔야겠다 하는 마음이 컸어요. 죄책감이 너무 심해서 잠도 못 자고, 자료 다 찾아보고 영상들 다 찾아보고 봤어요. 제일 잘못 생각하는게 이게 부모들이 선택인줄 아는거죠.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자살 시도율이 47퍼센트나 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선택이 아니라면 그럴 리가 없는 거예요. 아, 지금 중요한게 이게 아니었구나 동성애자 이고 아닌게 문제가 아니었구나. 그 다음부터 잠을 못자는 거는 내가 상처준 게 생각이 나고, 동성애자는 12, 13세에 안대요. 그 때부터 알았던 건데 엄마인데 몰라줬던 거. 나이든 성소수자의 부모님을 만나고 싶어서 왔고. 여기 와서 하늘님한테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저도 위안 받은 거 만큼 드려야겠다 싶어서 참여하고 있습니다. 얘가 계속 전화도 안 받고 메일 보내도 답장도 안 하고 그랬는데, 마찰 있을 때 부모한테 받은 상처가 되게 오래 가더라구요. 아, 내가 몇년은 더 기다려야하는구나 했는데, 지난주에 우리 애한테 처음으로 전화가 왔어요. 엄마 이제 용서할테니까 더이상 죄책감 갖지 말라고.
오소리: 26살 양성애자입니다. 현재는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고요. 행성인에서 반상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모모임에는 미국에 있는 성소수자 부모모임(PFLAG)을 방문했다가 감명을 받아서 올해 초부터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루: 서른 한살 게이입니다. 어렸을 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별로 안하고 살았어요. 13세때 부터 안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생각을 해보면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남성이 좋다는 생각은 했는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하고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초중고대학때 여자친구도 사귀고 그랬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좋고 이성애를 당연시 하니까 사귄거지, 그게 성적인 감정은 아니더라구요.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살다가 군대 다녀와서 우연히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사귀게 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어요. 너무 좋고 여자랑 사귀었을 때랑 다른 거예요. 처음엔 거부감이 있어서 아 난 남자 여자 다 좋아하는걸까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인정하고 게이로 확신했어요. 성소수자 이야기를 듣고 접하면서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나아져왔다는걸 인식하고, 자연스러운게 아니라 그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다는걸 알게 되면서 부채의식이 생겼어요. 작년 4월에 그 당시 동성애자인권연대에 가입하고 첫 모임을 나왔는데 이후로도 좋아서 되게 열심히 나왔어요. 열성적으로 참여하다가 올해부터 운영위원회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어요. 부모모임이 굉장히 핫하고 올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져요. 저희 부모님은 전혀 모르고 계시고. 남동생은 눈치를 다 챈 것 같아요. 커밍아웃을 하려고 말 못할 비밀이 있는데 말을 해도 되곘니? 했는데, 그날 낮에 티비에서 동생이 자기는 왜 차별하는지 모르곘다고 하는데, 왠지 내 동생에겐 말을 해도 될 것 같은데, 내가 얘길 해도 되겠니? 했더니 씩 웃어요. 웃으면서 하지말래요. 그래서 안했는데 너무 서운한 거예요. 행성인 오고 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니 동생 입장에선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기대가 자기한테 넘어오기 때문에 아는 것과 커밍아웃을 듣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은 전혀 모르시는게 확실해요. 저도 언젠가는 말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부모님들 뵙는게 뵐때마다 저희 부모님같고 부모모임 나오면 많은 감흥을 받고 가요.
바람: 저는 바람입니다. 열 일곱살 정도 후반에 친구사이라는 첫 모임에 나왔다가 행성인에 와서 활동하고 있고요. 일단 게이라고 알고 계시면 될 것 같고, 주민등록상 1번이에요. 저는 스스로 정체성의 갈등이 없었는데 집안에 종교가 있어요. 제 정체성과 종교가 많이 부딪히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14살 때 이쪽 형을 처음 만났어요. 그러다 콘돔이나 이런걸 엄마한테 들켜서 엄마가 이런걸 왜 들고 있냐고 하셔서 과학 실험을 위해서라고 했는데, 1년 전에 형이 제 컴퓨터에 있는 야동을 발견해서 술을 먹고 와서 저희 어머니와 양아버지에게 아웃팅을 한거죠. 지금 다들 알고 계신 것 같고. 최근엔 일자리를 구하고 있어요.
게스: 현재 대학 성소수자 모임에서 학교 대표를 하고 있고, 행성인에서 활동한진 8개월 정도됐어요. 시스젠더 남성 동성애자이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내가 게이다 하는 정체화를 한건 아니고 너무 자연스럽게 아,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했고, 자연스럽게 이쪽 커뮤니티에 나오면서 친구도 사귀고 재밌게 놀고 이런 문화를 즐기다가, 본격적으로 이런 편협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걸 알게 된건 작년 신촌 퍼레이드에서 포비아들을 보면서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사이가 좋았고, 저와 남동생에게 부모님이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어요. 부모님과 어렸을 때부터 소통을 많이 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커밍아웃은 안 했는데 알고 있으신 것 같아요. 퀴어문화축제때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혹시 오늘 시위하는 곳 같니? 하시더라구요. 어머니는 저한테 항상 제가 미적인 감각도 있다고 하시는데 꾸미고 이러는거에 신경도 많이 쓰니까 엄마는 너는 그냥 여자로 태어났어야했다고 하고, 엄마랑 엄마 아이라인 번졌다 이러면서 지내요. 커밍아웃은 안 했는데 애매한 사이에요. 지금이 성소수자 관련해서 사회가 역동적인 시기인데 저 자신도 그런 것 같아요.
창현: 행성인에서 활동한지는 6년됐어요. 처음에 제가 정체성을 알게 된 나이대가 초6이에요. 그 당시에는 어른들이 홍석천, 하리수 하니까 과연 저게 진짜일까? 했어요. 그 당시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차츰차츰 고3때까지 많이 힘들었어요. 얘기 할 사람도 없었고 저희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시거든요. 티비에서 보면 전환치료 한다고 토굴 같은데 끌고 가서 때리거나 굶기거나 하니까 난 얘기를 하면 저렇게 되겠다 싶었어요. 집안이 아버지가 6살때 돌아가셔서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살아서 이야기를 하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하까. 어머니가 옛날부터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많이 하셨거든요. IMF도 겪고 혼자 키우기 힘드셨대요. 엄마도 많이 힘든데 나까지 말하면 우리 엄마는 죽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때 남녀 분반을 했거든요. 학교도 미션스쿨이고. 학교에서 동성애는 죄악이고 유황불로 가야하는 존재라고 하고.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끝날때까지 집에 들어가면 말할 사람도 없고 참다참다 하다보니까 우울증도 많이 왔었고, 그렇게 지내다가 제가 다니던 청소년 센터에서 너의 꿈이 뭐니,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거든요. 저의 정체성에 대한 인권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홍대 센터에서 상담하면서 그 당시에 다음에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 카페를 통해서 행성인에 오게 됐어요. 집이 종갓집이다 보니까 장손이거든요. 집에 내려가면 좋죠. 큰 장손 왔다고. 내려가면 여자친구는 사귀냐 하시면 저는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안 사귄다 하는데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겠어요. 스물 네살인데 결혼 얘기가 가끔 나와요. 결혼 할 생각은 있냐, 대를 이어야 한다. 저희 어머니는 결혼에 대한 압박은 주지 않으세요. 저희 어머니도 결혼한지 얼마 안 되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래서 그런 어픔 없이 혼자 살아라 하시는데, 요 근래에 트러블이 많았어요. 저희 어머니도 알고 계신 것 같으세요. 3년전에 퀴어문화축제 끝나고 안내책을 받았는데 어쩌다가 가방에 있던걸 걸렸어요. 너 가방에 든게 뭐냐?, 뭐가?, 그러면 안되지 그런거 받지 말라. 그 후로도 가끔씩 장을 보면서 어머니가 굳이 이런 쪽을 해야겠냐, 학과가 이런 과다보니까 어떻게 하겠냐고. 차별할 수 있겠냐고. 어느날은 술을 마시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울고 계시더라구요. 왜 그러냐 했더니 너 그거 아니지? 하시더라구요. 저도 아니라고. 그렇게 하면서 지내다가 얼마 전엔 너가 뭐 하고 지내는지 엄마는 다 알고 있다고. 엄마가 교회 다니시다 보니까 성경에도 나오지 않느냐. 그런데 저는 또 절에 다니거든요. 종교 때문에 갈등은 없어요. 아직 커밍아웃은 안 했는데, 알고 계시는데 말하기가 껄끄럽더라구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거든요. 근데 어머니가 저건 좋은데 우리나라는 아직 안돼. 내 가족만 아니면 돼. 여동생은 더러워. 지는 팬픽 보면서. 제가 공익을 하고 있는데 이거 끝나면 너랑 나랑은 목숨걸고 싸울 날이 있을 거다. 엄마가 자꾸 울면서 이야기하니까.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는데, 엄마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 혼자 버시니까 저에 대한 신경을 못 썼구나, 동생은 어리고. 저한테 집안의 가장이라고 이야기를 하시니까 굉장히 힘들었어요. 집에 들어가기도 무섭고. 그러면서 여기 나오게 되면서 친구들 만나니까 말도 많이 하게 되고. 옛날에 옆반 애들은 저한테 벙어리인 줄 알았다고 했거든요. 집에 들어가면 고민이 많이 되요. 얘기는 많이 던져요 제가. 가끔씩 요즘 JTBC에도 결혼 합헌 보면서 이야기하는데도 자기는 아직 이해를 못하겠다. 그래도 천천히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앞으로 부모모임에 같이 나오셔서 이야기하는게 꿈이거든요. 꿈이 이뤄질지는 불확실하기도 하고. 등잔 밑의 촛불처럼 살고 있습니다.
백순재: 저는 스물여섯 게이에요. 정체성은 아홉 살 때 알았고, 열네 살 때 처음 엄마한테 말했습니다. 그땐 무시당했어요. 스물한 살에 다시 말했을 땐 받아들이셨구요. 엄마랑 얘기 할 때 괴로워서, 못 참겠어서 말했던 거 같애요. 엄마가 저에 대한 애착이 심했는데, 나한테 힘은 못 돼 주면서 뭔가를 요구하고만 있다는, 그런 분노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엄마를 이해해요. 그리고 원망에만 빠져서 거칠게 말한 것과, 수용에 걸리는 시간을 기다려 주지 못하고 급하게 몰아붙인 것에 대해 많이 미안해하고 있어요.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심신이 아주 건강해졌어요. 커밍아웃을 수없이 거치면서 어느덧 완전히 오픈하게 됐구요. 자긍심 만땅으로 밝게 지내요. 아빠랑 동생에게도 조만간 말할 건데, 이번엔 엄마한테 했을 때처럼 눈물범벅이 아니라 “아빠, 나 게이지롱!” 이렇게 발랄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빠가 울면 우쭈쭈 해 주면서 “처음엔 다 그래~” 이제는 제게 그럴 수 있을 만한 여유와 마음의 힘이 있어요. 자녀들 스스로가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씩씩함을, 본인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긍정을 먼저 갖고 말한다면 부모님이 어떤 리액션을 하시든 침착하게 응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땐 제가 정말 다크했는데 이젠 가히 가문의 애교쟁이라고 할 만큼 부모님과 사이가 좋고, 제가 친척들한테까지 예쁜 짓을 많이 해요. 이건 전적으로 제가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또 엄마가 받아주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절대 지금처럼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 수 없었을 거예요.
재성: 이재성이고 HIV/AIDS인권팀과 활동회원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업은 따로 있는데 주말에 여기 오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부모모임이 사람이 가면갈수록 많아져서 기대가 됩니다. 부모님에겐 이야기 안 했고, 11월 하순에 레드파티라고 에이즈 기금을 마련하는 일을 준비하고 있어요.
(휴식)
지기: 저는 부모님에게 궁금한 게 있는데 알게 되셨을 때 처음에야 차라리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떠신지?
무애: 저는 관계가 좋아진 케이스에요. 지금도 우리 아이가 열 일곱살인데 우리 아이한테 레이더가 가 있죠. 아이가 처음에 양성애자에요, 했는데 제가 내가 볼때는 게이인거 같은데? 했어요. 너의 가장 큰 문제는 너가 성소수자여서가 아니라 너의 일을 똑바로 안해서가 문제다. 친구사이 부모모임 갔다 오니까 엄마, 나는 게이에요. 하더라구요. 행성인 부모모임에 갔더니 엄마, 사실은 내가 트랜스젠더 같아요. 짜증이 나더라구요. 얘가 자꾸 커밍아웃 할 수록 바뀌잖아요. 행성인에서 주는 책 중에 트랜스젠더는 두 종류가 있는데 신체를 바꾸려는 트랜스젠더냐 아니냐 물어봤어요. 에이냐 삐냐. 에이면 날짜를 잡고 계획을 세워야한다. 엄마 나는 신체를 바꿀 생각은 없다. 그럼 너는 삐구나. 아이가 성정체성이라는게 단정지을 수가 없더라구요.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규정할 수가 없는 것 같았어요. 근데 행성인에 갔다 오면 잘생긴 형들 많이 왔어? 이러길래 게이 같은데 애가 하고 노는 것이 너무 트랜스라. 가발쓰고 분홍색. 근데 나는 게이다 하고. 딱 정체성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부러워요. 우리 아이가 만약에 좀더 가서 저 젠더에요 하면 인정을 하고 계획을 세워야겠구나. 제가 성정체성을 아주 편견의 벽이 아예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관점은 뭐냐면, 엄마 나는 게이 레즈에요 했을 때, 우리 아이가 착한 아이들이거든요. 우리 아이가 변태입니까 정신병자입니까? 우리 애는 어디에 들어가는 겁니까? 소속이. 알아본 결과, 저는 천동설 지동설 이야기 많이 해요. 지구가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어요. 여자 남자, 우리의 모습은 다 다르잖아요. 모습이 다르고 성정체성이 다양한건 당연하죠. 저는 간단하게 생각했어요. 저를 생각했고. 어디 가면 제가 레즈비언으로 많이 오해를 받아요. 그 중에서도 부치. 내가 레즈비언으로 바뀔 수 있는가? 안되거든요.
나미: 그 전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무애: 정신병자 집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아이는 5, 6세부터 달랐어요. 딴 사람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요. 전문가고 뭐고 필요가 없어요. 나는 아이를 낳아본 엄마인데.
제이미: 몇 년 되신?
무애: 삼개월이요. 세월호때도 우리를 속이고 난리를 쳤는데. 믿을 수가 없다. 부모로서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무엇이냐, 너는 네가 잘못한게 아니야, 자연스러운거야. 했어요. 넌 자연스러워. 우리는 해피해요. 그 전보다. 저는 부모로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느냐, 계속 괴로워하면서 내 애를 들볶으면서 가정을 불화시키며 할 것이냐. 이게 부끄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우리 나라 부모모임에 참석하는 부모님이 30명만 있어도, 퀴어축제에 5명, 6명 적은 사람만 왔는데도 언론이 집중하면서 봤어요. 다른 때는 변태다 아니다 하다가, 부모들이 나와서 하니까 달리 보더라구요. 상세히 알아보세요. 우리가 가만 있으면 계속 봉인할거에요. 다수가. 우리 아이들은 폭력과 혐오 속에서 살아야 해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한겨레 21 기사 나갔을 때 우리 애가 다시는 그런데 나가지 말라고, 세상은 안바뀐다고 그러더라구요.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까 나가는거라고. 부모님들이 나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자세히 알아보세요. 티비에 음성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다루잖아요. 세상이 바뀌고 있더라구요. 상세히 알아보시길 바래요.
라라: 커밍아웃 했을 때 부모의 심정에 대해 얘기하자면, 저는 좋게 커밍아웃한 게 아니에요. 서로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보는데,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게, 그 아이가 중학교 1학년때 검정고시 준비를 할 때 밤에 잠을 안 자고 채팅을 하는데, 그애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요. 우리 아이랑 밤새 채팅을 한다고 공부를 안한다고 자제를 시켜달라고. 그게 지금 생각나더라구요. 저는 대전에서 다니라고 반대를 했는데 기어코 서울로 왔어요. 그 이유가 부모로부터 자유롭게 친구들도 만나고 사귀고 싶고. 부모님은 인정해주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나봐요. 그로부터 2년후에 남자친구를 사겼는데 남자친구랑 싸우다가 강에 뛰어들겠다고 했다가 시민의 제보로 경찰서에 잡혀 있더라구요. 애정결핍이 강화되어 가지고. 자기가 집착하는 대상이 자기한테 몰두하지 않을때. 어릴 땐 그런 적이 없는데, 연애를 하다보니까 그런 현상이 자꾸 나타나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됐는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요. 저는 크리스챤이고 어렸을 때 부터 그 목사님 설교를 들었는데, 정체성이라는 게, 분명히 여자가 되고 싶어해요. 호르몬도 맞고 있고 수술도 받고 싶어해요. 그런데 사랑하는 대상은 멋진 (게이)형을 좋아해요. MTF는 이성애자 남자를 좋아해야지, 하는데 아닌거예요. 내가 몰아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받아들여야죠. 근데 그게 이루어지기가 되게 힘든 사랑인거예요. 우리 아이가 커뮤니티라던가 이런거 공부를 많이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도 친구들이 게이인데 게이니까 만나지마, 할 수 없죠.
무애: 저는 오히려 부러워요. 우리 애는 아닌 척 하고 있어요. 친구들이랑 놀러 갔다고 하면 부러워요. 아닌 척 하고 있어요.
라라: 다른 병동에 있는 사람들이 내기를 했대요. 쟤가 남자일까 여자일까. 남자 병동에 있으니까 남자겠죠? 할아버지가 이겼다고. 거기에 같이 한달을 있어 보니까, 얘가 얼마나 사회 속에서 혼란스럽고 힘들었을까 공감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늦지 않게 힘들었지만 그 아이 치료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감사해요. 근데 이제 한가지 조금, 종합병원에 있을 형편이라 트랜스젠더 별의별상담소에 가지를 못하는데, 제가 우리애가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자기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다고 그랬더니 의사가 자존감이 낮아서 외모에 집착하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어릴 때 부모와의 대립 그런 것들이 원인이 되어서 자존감이 낮아져서 외모에 집착을 한다, 해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는구나.
문이채린: 저는 자신된 입장이지만 듣고 계실 부모님들께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저 같은 경우엔 어머니께서 완전히 인정하기까지 조금 오래 걸리셨어요. 그런데 사실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드리냐 마냐의 여부는. ‘내 자녀가 동성을 좋아한다, 동성이랑 섹스를 한다.’ 이런 포인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존감의 문제에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잖아요. 어딘가에 소속되어있지 못하거나 혹는 어떤 소속에서 집단적으로 거부한다는 사실자체만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공포를 동반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게 중요한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동시에 받았던) 가족들마저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 지지 않는 다는 것. 이런 포인트가 문제거든요. 과연 가족마저 등을 돌릴게 뻔한 상황인데 다른 누가 날 이해해줄까? 누가 사랑해줄까? 하는 문제까지 간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학업이라던가 취업이라던가 이런 큰 목표에서부터 사소한 일상까지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흔들리고 불안하게 되는 거에요.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성소수자의 부정적 이미지. 우울증, 선정적, 가출이나 비행, 자살 시도 등은 실제로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성소수자 지인들 중에 가족들이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은 분위기부터가 달라요. 표정이. 그렇지 않는 친구들은 잘 웃지도 않고. 만나면 사회원망에 인생하소연하기 바쁘고 그런데 가족들이 인정해주는 경우의 친구들은 훨씬 더 큰 그림을 볼 줄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 된 입장이신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이 동성애자, 성소수자여서 나쁜 길로 들어서거나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게 아니라 아무한테도 손을 내밀 수가 없어서. 자신들을 받아들여줄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너무도 빨리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고 차마 요구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어떻게든 순응하고 살아보려 애쓰다 보니 스스로 망가지는 거에요..(망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 체) 하지만 만약 사회가, 학교가, 친구들이, 가족들이 성소수자들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떠드는 성소수자의 부정적 이미지도 일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디 용기를 내시고 한번만 더 손을 내밀고… 진심을 담아 소통해주시길 부모님, 자녀분들 모두에게 조심스레 바래봅니다.
지인: 말씀하신 것처럼 외국에서는 오랫동안 연구를 했어요. 연구 나온거 보면 성소수자 자살 시도율이나 이런거에서 부모가 수용한 쪽에 비해 자살률이 6배가 높아요. 미국 가출 청소년의 40%가 성소수자에요. 우리나라도 많이들 그러고 쉼터도 가고 그러는데. 그러다가 우울증도 걸리고 그래요. 우울증도 8배나 높아요. 우리는 사회의 편견을 걱정하지만 정말 힘들게 하는건 부모라는거. 그리고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자기가 성소수자인걸 받아들이는데 오래 걸리는데, 부모도 그 정도 걸려요. 평균 2년 걸린대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 잘 받아들이는 부모도 있는데 엄마는 왜그래? 하면 안돼요.
하늘엄마: 저 같은 경우는 대학 졸업 직전에 알게 됐는데, 제가 알게 된게 26살 때였어요. 아들을 통해서 안게 아니라 이성애자를 짝사랑을 했어요. 그 애가 나한테 전화를 해서 알게 됐어요. 우리 아이가 갑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밥을 안 먹고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근데 말 안하고 밥 안 먹는건 부모에 대한 폭력이에요. 근데 여기 나왔을 때 자식들이 싸인 준다고 하는데 눈치 못 챘어요. 우리 남편이 착하고 섬세하고 그런 사람이라 제 말을 잘 들어주는 남편이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생각을 한 거지. 저는 무의식중에 아들한테 뭐라고 했냐면, 알기 두 달 전쯤에 얘 너는 여자애 사귀더라도 두루뭉술하고 편한 애를 사겨라. 모르고 그런 말을 하면 우리 아들이 네 그러더라구요. 그때는 충격이긴 했죠. 괜찮아지기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그 2년동안에 저는 애 눈치를 굉장히 많이 봤어요. 우리 애가 굉장히 심한 우울증을 겪었더라구요. 애가 너무 힘들어해서 내 감정은 사치더라구요. 미국 여동생한테 전화를 했더니 한국에서 살려면 힘들테니까 아들 데리고 미국으로 와라 이러더라구요. 근데 제가 영어를 할줄은 몰라가지고 이 나이에 영어를 배우겠어요? 일단은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동생이 메일을 써줘서 그걸 내가 쓴 것인것처럼. 이성애자를 좋아하는건 아닌 것 같다고. 이 세상이 뒤집어져도 엄마는 네 편이야. 하는 말은 빨간 줄을 쳤어요. 젊은 애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내 감정, 슬프다 어쩌다는 뒤로 넘겼어요. 우리 애 앞에서는 기분 좋은 척 하다가 나가고 나면 누나 앞에선 울고 싸매고 누워있고. 카톨릭에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도 십자가 쳐다보면 눈물나고. 서울 올라오고 친구사이 모임을 가면서, 거기 있는 젊은이들을 보니까 이건 뭐 타고 난 거 더라구요. 그 2년 동안에 내가 잘못키운건가, 이거 무서워서 어떻게 부모가 되냐, 죽을 힘을 다해 키웠는데, 0세에서 6세의 잘못된 육아 그게 너무 상처가 됐고 저는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정말 우리 아들 다운된 거 일으켜 주느라고. 애 앞에선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근데 우리 아들이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 잘 하고 그랬으면 저도 실수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다행히 우리 아들이 힘든 상황이어서. 친구사이 가면서 죄책감이 해결되고. 지금은 너무 좋고 우리 아들하고 저하고 관계 회복이 잘됐어요.
나미: 얘가 머리를 긴머리를 항상 했었거든요. 짧은 머리를 어느날 했는데, 그게 1년 좀 넘었어요. 너무 어색하고 주변에서 긴머리가 훨씬 예뻤다고들 해서. “결국은 길러야겠네?” 그랬어요. “기를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더라구요. 조금씩 표현을 했던 것 같아요. 자기가 몸은 여잔데, 흠잡을 데 없는 여자거든요, 그런데 자기 생각에 자기는 남자인 것 같대요. 완전히 남자는 아닌데, 여자는 확실히 아니고, 남자 쪽에 가깝다는 거예요.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나도 예전에 남자였으면 좋겠다. 남자처럼 옷 입고 딴 사람들 시선을 즐긴 적도 있거든요. 그랬는데 강도가 조금씩 세지더니 대학교 2학년 중반에 자기가 그렇다는 걸 알아가고 있이었는데 3학년 올라와서 자기가 알아본걸 하나씩하나씩 얘기를 하는데 “남자 같아요” 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살 수도 있겠다 생각했거든요. 근데 남자로 몸을 바꾸는건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고, 내가 잘못키운건가 하기도 했고, 얘가 호르몬을 하고 이럴거는 생각을 안 했고,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좋게 안 봤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닫힌 마음이었다가 조금씩 생각을 그쪽으로 하다 보니까, 그래 얘 걱정할 일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생각해 보지 않은 세상에 대해서 너가 생각할 기회를 줬어.” 두 세달 전에 얘기를 했어요. 근데 그때도 심각하고 가슴 아프고 그러지 않았어요. 3학년 1학기를 중간에 도저히 할 수가 없대요. 애가 마르니까. 먹지를 못하고. 그래서 휴학을 했어요. 공부하고 탐구하는걸 굉장히 좋아해서 나중에는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는걸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얘를 그거만 시켜 놓으면 엄마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애가 힘들어하는걸 보니까, 다른게 중요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알아봐라.” 하고 허락을 해주니까 그 속도가 굉장히 빨라져요. 그때까지는 호르몬 얘기는 없었는데 본인이 결정하기에 부모한테 이야기 해봐야 반대기 때문에 자기 혼자 피 검사 하고 한 거예요. 그걸 제가 보고 확 맞은거죠. 자기는 호르몬은 하고 싶은데 몸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고, 남자처럼 보이고 인식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안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괴로워하더라구요. 여기 계신 자제분들 다 착한 것 같은데, 얘도 저절로 컸거든요. 문제가 될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호르몬하는걸 보고 자기 혼자 하는 과정이 부모 모르게 하는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너가 부모를 설득을 해서 허락을 받아내라. 그렇게 못하면 독립을 하는게 낫겠다. 해서 2주간 갈등이 컸어요. 아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 이때껏 남자 여자 갈라서 생각을 해 왔지 그 중간도 있겠다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 오게 된 건 먼저 겪었던 부모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왔는데, 본인이 호르몬 치료를 해서 행복을 얻으면 그걸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여기 계신 부모님들은 굉장히 현명하시고 인간에 대해서 이해하는게 이 런걸 겪지 않은 사람과는 다를 것 같아요.
라라: 트랜스젠더 부모님 두 분이 오셔서, 지난 해에 본 마이차일드 영화에 어느 FTM 트랜스젠더 아이가 거식증이었어요. 가슴 엉덩이가 커지는게 싫어서. 같은 부모한테 났는데 호르몬 맞기 전에 51키로그램이었어요. 신발은 240인데 신발을 작은 걸 신어서 뒤가 다 까져있고. 살이 찔까봐 먹은건 다 토했고 돌코락스를 세 알 씩.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밥 먹는게 행복하지 않아요. 키가 안 크려면 탄산음료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해서 콜라 큰 걸 하루마다 먹고. 왜 그렇게 많이 먹냐. 열시부터 2시까지는 성장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시기라서 그 시기에는 잠을 잘 자야한다고 우리가 교육을 했는데 애는 잠을 안 자서 불면증을 앓고 있고. 다르지 않아요.
제이미 어머니: 만약에 호르몬을 맞고 남자처럼 변해가면 주민등록상은 여자잖아요. 그러면 그 주변에서 취직을 할거나 할 때 불이익이 크다. 사람이 잘 살려면 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반을 만들고 나면 해라 하는데 그 시간을 못 참아요. 그게 속에서 굉장히 큰 건가봐요. 그 괴리를 자기가 확고한 위치에 섰을 때 트랜지션을 하는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무애: 세상은 바뀌고 있어요. 앞으로는 성소수자들이 직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 특별전형도 더 많아질거고. 언론에서 다뤄주고 있어요. 국민들이 뭐지? 하고 갸우뚱 하고 있어요. 그 전에는 언론에서 덮어놓고 다뤄주지 않았는데 이제 다루고 있어요. 앞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라도 트랜스인 선생님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봐요.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여자인데, 남자로 어거지로 참고 살아라 하는 건 저부터도 싫을 것 같아요. 그런 걸 강요하는 건 그것만한 폭력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도 호르몬을 맞겠다고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호르몬을 맞을 때 기쁘게 맞을 수 있도록. 비싼 호르몬 맞으면서 우울해하고 있니.
제이미 어머니: 근데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면, 남성의 외형이 필요가 없을 수도 있잖아요.
지기: 저는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여성으로 서류상으로 되어 있는데, 아버님 말씀도 너무 이해가 가요. 저는 본인이 행복한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커밍아웃한지 1년 정도 됐는데, 커밍아웃을 할 당시엔 대학생이었는데 그 짧다고 생각한 1년 동안에 내가 레즈비언으로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도 바뀌는 거고. 전 외국계 회사에 있어서 좀 다를 수 있지만, 내가 커밍아웃을 안 했으면 이 분들이랑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내가 숨기고 있었다면 친해질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저는 동성애자인긴 한데, 보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남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고. 화장실에 갈 때도 갈 때마다 설명을 해야 하고. 근데 학교에서 그 경험을 했을 때는 너무 화가 났어요. 어떻게 그렇게 무례하게 물어보지. 지금은 그냥 여자예요. 하면서 괜찮다고 하고.
제이미 어머니: 트랜스젠더는 수술도 힘들다고 하고.
지렁이: 여자에서 남자가 되는 경우가 더 잘 바뀌어요.
지렁이 어머니: 자기가 찌찌를 없애고 수염이 나고, 저는 아직도 앉아는 있는데 위에서 누르는 것 같고. 우리 동창생 따님도 그렇다고 하는데, 이렇게 확고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같잖은거예요. 지가? 꼴값을 떨어요. 그림을 그려요. 만화를. 만화를 그리는 것도 문제가 있어요. 오빠들도 다 기절을 하는거죠. 친구가 있어요. 우리하고 있을 때는 좋은거 맛있는거 지가 하고 싶은거 다 했어요. 근데 걔만 딱 오면 몸서리를 치는 거예요.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냐. 근데 그렇게 이야기를 해준게 더 나은 것 같아요. 병원에서 들었으면 충격받았을 거예요. 아빠가 너무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지? 찌찌 같은거는 안 없앴으면 좋겠어요. 목소리 되게 이뻤거든요. 아들들이 와서 밥을 사주고. 지금 오빠한테 뭐? 하는거 보면 잘한거 같기도 하고. 예전엔 예예 했는데 지금은 자기 뜻을 너무 잘 이야기하고. 호르몬만 좀 안 맞았으면 좋겠어요.
무애: 시간이 걸려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지렁이 어머니: 그래서 제가 그래 꼬투리만 잡혀봐라 니네.
무애: 근데 어떠신 것 같아요? 뻔해요?
지렁이 어머니: 아뇨. 잘 온 것 같아요.
(소감)
문이채린: 소감전에…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제가 당사자가 아니어서 확실하게는 말을 못 드리지만… 저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말씀 더 드리고 싶어요.
흔히들 성소수자 분들께서 ‘나의 성적지향은 단지 나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것이 전체인양 나란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속단하고 차별하지마.’ 라고 주장합니다. 맞아요. 젠더라는 것, 성적지향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한 부분일 뿐이에요. 하지만 인격의 구성을 하나의 커다란 탑이라고 가정한다면요.. 젠더나 성적지향은 가장 중요한 밑부분을 차지하는 지지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지만 만약 이 지지대부분이 없거나 허술하다면 인격의 탑은 불안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런 상태에서 제이미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제이미님이 원활하게 해내실 수 있을까요?
제이미 어머니: 그게 제이미가 저를 설득하는 말이거든요.
빼꼼: 저는 지금 이자리에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 엄마가 무애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한겨레 신문을 보면서 무애님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이번에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하면서 중요한 이야기는 안 나가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나가더라구요. 저는 이 자리에서 드는 생각은 너무 부러운 거에요. 가족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주니까. 그게 너무 부러운 거예요. 아, 우리 엄마는 안 그런데. 몰랐다가 나를 부당해고 한 사장 부부가 교회 집사고 아들이 신학대 다니고 있는데 그 아들이 엄마한테 아웃팅 하면서 빼꽁이가 자기 친동생 같으니까 이렇게 말해주는 거라고. 어머니 제가 많이 도와드릴 테니까, 전환치료가 가능하다, 정 안되면 이요나 목사도 자기가 소개를 해 줄테니까 상담을 받아라 그러는 거예요. 근데 사장 사모가 저한테 이야기한 게 네가 면접 당시에 동성애자라고 말했다면 뽑을 생각이 없었다.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래서 제가 한 일이 우리는 왜 일을 하면 안되느냐. 집이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아요. 집에 보탬이 되려고 일을 했는데. 그리고 에이즈 걸렸다고 유언비어 퍼트리고. 물벼락을 던지고 돌덩이를 던지고. 왜 사느냐. 6개월간 노숙을 하면서 하루는 길을 가다가 사복 경찰한테 걸려서 실종신고가 들어왔는데 경찰서에 연행되어서 교회 사람들 다 와서 파출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공익근무 하는데 교회 사람들이 다 찾아와요. 우리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다 존재해요.
창현: 굳이 왜 싸워야 하는지 생각을 해요. 안 싸워도 엄마랑 저랑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이상한 이요나 같은 사람들 이야기 때문에.
지렁이 엄마: 처음 왔을 때 보다는 편해졌는데 계속 4개월 째, 5월 13일이 머리를 안 떠나고 있어요. 안되겠죠. 본인이 꼭 해야한다면. 둘이 조용히 살아야죠. 너무 용감해져서 그거 하나는 좋아요. 돈 필요 없어 우리 나갈거야. 하고. 더 좋아지겠죠. 아빠도. 저희 집은 그래도 조금의 조언이라도 해주니까. 그래도 깡패같은 엄마 있으니까 괜찮아요. 오늘은 처음 올 때보단 편해졌어요.
지기: 저는 원래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할 생각은 별로 안하고, 언니랑 같이 살면 그게 결혼이지 뭐. 했는데 생각보다 미래가 안보이더라구요. 엄마한텐 뭐라고 하지, 하는 고민이 들다가, 나중에 결혼식에 꼭 부모님이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문이채린: 일단 여기 와서 많은 걸 느끼기도 하고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말씀 주신 분들께 소소한 감사의 인사 드리고 싶어요. 아직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문제는 남의 일로 치부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소수자들은 어디에나 누구의 자식으로 친구로 형제, 자매로서 존재합니다. 그들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사실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모님들과 가족들의 연대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와계신 가족 분들 너무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주디: 저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여기 와서 부모님들이 자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 보니까 힘이 나고요. 저희 부모님도 오셨으면 좋겠어요.
지인: 우리 애들이 힘들잖아요. 통계로도 봤을 때 그걸 견디고 있는 아이들을 자랑스러워 해야해요.
하늘엄마: 부모모임에 꾸준히 오기가 힘들 수도 있어요. 근데 끊어지지 않고 나와주셔야 우리가 자립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가족만 되면 끝난게 아니라 매달 오게 되면 새로운걸 배워요. 작년엔 퀴어문화축제에 지인님이 혼자 나가셨어요. 올해는 6명이 나갔고. 처음 오신 어머니들 힘드시겠지만, 저도 이제 퀴어문화축제에 갔을 때와 안 갔을 때의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시청에서 퀴어 축제를 했을 때 바깥에서 개신교들이 둘러싸고 있는 걸 보고, 이건 이렇게 있으면 안되겠다, 개신교 중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하는 건줄 알고 불쌍하게만 여기고 신경을 안 썼는데, 이번에 퀴어문화축제에는 개신교도들이 정말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저도 개신교 친구한테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 친구가 굉장히 놀랐어요. 성수자는 감싸주는데 동성애는 안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구요. 어머 쟤가... 그건 뭐냐면 교회 목사가 긴 시간동안 암암리에 세뇌 교육을 시킨 거거든요. 그 친구를 만날 때 전환치료에 대한 내용, 지인님이 쓰신 편지, 통계들 다 프린트 해서 이거 읽어보고 와라. 우리 동생이 미국에서 그러더라구요. 언니 정말 훌륭한 일을 하는데 개신교 신자들한테 맞을까봐 조심해서 하라고. 한국도, 무지에서 깨어 날거다. 그래서 내년 퀴어문화축제 때는 머릿수라도 채워주시면, 작년에 한 사람 갔을 때 바뀌었고, 올해 6명 갔을 때 또 확 바뀐 것도 보여요. 한국 사람들이 또 바뀌려면 확 바뀌거든요.
순재: 6월에 부모모임 처음 나올 때는 어떤 비장함이 있었는데 이젠 여기 오는 게 편하고 가볍고 신나네요. 이모들하고 수다 떨러, 놀러 오는 기분? 그리고 친구사이 지보이스 올해 정기공연에 참여하게 돼서 요새 매주 연습하고 있어요. 10월 9일 한글날, 종로 조계사 4시/7시 반입니다. 다들 꼭 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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