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부모모임 25차 정기모임 대화록
2016-08-12 오후 18:08:47

성소수자 부모모임 스물다섯 번째 정기모임 대화록

 

부모모임 25번째 정기모임 웹자보.png

 

 

 

 

 

일시: 2016년 4월 9일 토요일 4시

 

장소: 서울 마포구

 

참석:

- 지인: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하늘엄마: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

- 라라: 트랜스젠더 딸을 둔 어머니

- 영필: 트랜스젠더 딸을 둔 아버지

- 뽀미: 레즈비언 딸을 둔 어머니

- 나미: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어머니

- 샤넬: 게이(가족이 전혀 모름)

- 모리: 게이(가족이 다 알고 있음)

- 바람: 게이(부모님과 형이 알고 있음)

- 어나더: 게이(부모님이 알고 있음)

- 오소리: 양성애자(누나만 알고 있음)

- 신다애: 레즈비언(가족이 전혀 모름)

- 용: 게이(가족이 전혀 모름)

- 제이: 레즈비언(가족이 전혀 모름)

- 김글로리: 게이(가족이 알고 있음)

- 가나비: 게이

- 람보: 게이

- 희은: MTF 트랜스젠더


 

사회: 어나더

속기: 모리, 오소리


 

어나더: 스물 두 살. 남성 동성애자에요. 오늘이 딱 열두번쨰 모임이어서 의미가 깊어요.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아웃팅 비슷하게. 지금은 집에서 나와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샤넬: 행성인에서 활동하는 스물 다섯 살 샤넬입니다. 커미아웃은 안 한 상태인데 땅에서 새싹이 나오는 것 처럼 준비 중이에요. 남성동성애자예요.

 

신다애: 행성인엔 저번 달에 가입을 했고 커밍아웃 비슷한 걸 했을 때 제일 기대고 싶었던 곳이 부모모임이어서 나오게 됐어요.

 

라라: 저희 아이는 MTF 트랜스젠더. 전에는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가 현재는 수술을 안하겠다고 하네요. 부모 모임을 통해서 저 자신도 달라지고 우리 아이와도 관계가 좋아졌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건 별로 도움이 안되더라구요. 가족과의 관계에 도움이 안될 수도 있어요. 부모모임이. 근데 내가 잘 설 수 있는데는 도움이 되고 있어요. 얼마 전에 뉴스 앤 조이 인터뷰를 했는데, 제가 원래 탈 기독교를 하려고 생각 했었는데, 무슨 목소리를 내더라도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영필: 라라님 남편입니다. 모임에 처음 왔어요. 라라님을 통해서 모임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걸 느꼈고.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하늘: 게이 아들을 둔 엄마이고 아들은 34살이에요. 저도 얼마 전에 뉴스앤조이 인터뷰를 했는데, 댓글에서는 어지간히 욕을 많이 먹고 있어요. 그래서 참 오래 살겠구나 싶더라구요. 댓글 내용이 저를 많이 아프게 하더라구요. 저는 종교가 카톨릭인데 이 안에서 내가 버티고 살아가야 한다는게 제 어깨가 굉장히 무겁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평정심을 갖고 끝까지 붙잡고 가야겠다는 힘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저를 다스리고 있어요. 교회 안에서 더 깊게 살아가야 되겠다, 아까 라라씨 말씀처럼 교회 안에서 투쟁을 하겠다는게 저도 반가웠고, 그 안에서 버티려면 내 안의 체력을 많이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독교가 변하면 우리 사회도 많이 변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미: 모임에 나온지는 작년 9월에 처음 나오고 이 모임이 세번째에요. 잘 나오진 않는데. 스물 세살 딸로 태어났던 애가 남자라고 해서 그게 지금부터 1년 반, 2년 전에 걔가 머리를 짧게 자르면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예요. 그렇게 심각하게는 안받아들였어요. 그래 그럼 남자로 살지. 하다가 본격적으로 아이가 호르몬치료를 하려고 하면서 작년 9월부터 아, 이건 심각한 문제라는게 와 닿아서 그때부터 모임에 나오고 제 모든 여기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나 이런게 거의 그 무렵부터 제대로 접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그런 정보를 얻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제일 도움을 많이 받은게 부모모임에 나온거였어요. 나름대로 아이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겠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게 될 것인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게 되면서 내가 나 힘든 것도 있지만 같은 문제를 접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내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생각도 하게 되고. 제가 자주는 못 오는 상황이지만 끈은 안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애는 1년 간 자기 나름의 고민을 많이 하다가 대학 3학년 때 휴학을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러다 올 봄에 복학을 해서 굉장히 열심히 학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용: 남성 동성애자이고 지난번에 서강대에서 행사 했을 때 참가를 하고 오늘 두번째 참가해요. 스물 여덟살이고 아버지만 계신데 아직 모르고 계세요.

 

제이: 레즈비언 24살이고 오늘 처음 오게 됐는데 저는 어머니만 알고 계세요. 용과는 같은 학교 친구예요.

 

가나비: 스물 한살이고 남성 동성애자이고 어머니와 형은 제가 동성애자인걸 작년부터 이야기를 해서 알고 계시는데 아버지는 접하시지 않은 상태예요. 가족들과 의견 충돌이나 갈등이 많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나마 대화도 많이 해서 서로서로 이해를 해줄 정도까지는 된 것 같아요. 부모모임엔 처음 참석하는데 잘부탁드립니다.

 

김글로리: 쑤로 알고 계신 분도 있을 거예요. 고등학교 3학년때 첫 커밍아웃. 올해 초에 어머니가 게이로 인정을 해주셨어요. 어머니와 얼마나 친해졌냐면 너 남자친구는 키크고 잘생기고 몸 좋은 애로 데려와라는 말까지 나눌 정도. 작년에 부모모임에 처음 왔었고 여기 온 이유는 많은 분들과 함께 제가 인정받은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오게 됐어요.

 

바람: 행성인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있고 어머니와 형이 알고 있고 혼자 살고 있어요.

 

오소리: 행성인에서 상임활동 하고 있어요. 누나에게만 이야기 했고 잘 받아들여줬어요. 부모님에게는 준비중이에요.

 

지인: 저는 스무 살 게이 아들을 둔 엄마고 애가 게이인 걸 알게 된 건 삼년 전이고 그때는 보통 엄마들처럼 마찰도 있었고 힘들어 한 기간도 일 이년 있었다가 부모모임에 오게 됐어요. 부모모임을 더 많이 알려서 부모님들과 자식들이 마찰을 적게 겪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람보: 27살이고 스물 한 살 쯤에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커밍아웃 하게 됐어요. 그 전에는 커미앙웃 안하고 살려고 했는데 이야기 하다가 너는 왜 여자친구가 없냐고 하셨는데, 어쩌다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어머니가 그러면 ‘남자가 좋냐?’고 물으셔서 나는 좀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 했죠. 크게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갈등이 있었던 건 아닌데 한번은 엄마가 술을 드시고 저한테 오셔서 종교가 있는 집인데 너가 지옥에 갈까봐 두렵다고 하셨어요. 전부터 자유롭게 저를 키우셨는데. 저는 종교적인 갈등이 계속 있었어요. 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친구는 되게 우호적이었어요.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더 행복해졌어요. 근데 항상 종교적인게 마음 속에 걸렸어요. 그러다 올해 2월에 설에 집에 가게 됐는데 엄마가 다시한번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 성향을 바꿀 수 없냐고. 그 전에도 몇번 말씀 하셨는데 나는 바꿀 수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다음날 펑펑 우시면서 통곡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엄마를 위해서 좀 변화를 하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하나 싶어서 엄마에게 동성애 이쪽과는 관계를 끊겠다고 맹세를 했어요. 근데 얼마 전에 엄마가 내려오라고 해서 대화를 했는데 엄마가 이런 모임을 저 모르게 알아보셨던 거예요. 엄마가 이런 모임이 있다고 너를 이해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작년에 퀴어문화축제에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이라는 문구가 적힌 포토존이 있었는데 그게 되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게 되게 슬프기도 하고.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기도 하고 이 모임을 하면서 점점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고. 이 모임에 와서 반갑고 희망 적 인 것 같아요.

 

뽀미: 스물 다섯 살 딸이 레즈비언이에요. 적극적으로 이런 모임에 참석을 하거나 그럴 필요를 잘 못 느꼈어요. 내 딸이 레즈비언 인 게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아예 안 바뀔 것이면 받아 들인다는 생각이어서 특별히 활동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못했어요. 근데 이거 때문에 자살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을 일도 아닌데 왜 죽어? 하는 생각이었는데 죽을 일도 아닌데 죽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모임에 나오게 됐어요.

 

스톤: 스물 두살, 웹진팀 활동중. 가족중엔 작은누나만 알고 있어요. 부모님과 특별히 갈등이 있진 않아요.

 

희은: 서른 한살 장희은이에요. 어제 회사 면접 보고 호르몬 주사 맞고 왔어요.

 

어나더: 오늘 오신 분들 중에 처음 오신 분들이 많네요.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분 계신가요?

 

김글로리: 제가 고3때 커밍아웃을 했을 때 되게 상황이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고 슬픈 상황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부터 남자 아이돌을 좋아 하는 걸 부모님에게 티를 내면서 지냈어요. 엄마가 게이는 아니지만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하셨는데, 그 후에 제가 정체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에게 밝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티비에서 한국인의 밥상, 너무 맛깔 난 음식을 보면서 이 상황에서 커밍아웃을 하면 되게 웃기겠다, 어떻게 하지? 하면서 고민을 하다가 소파 밑으로 내려갔어요. 부모님 입장에선 재밌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는데 아들이 꽁해 있으니까 무슨 일 있냐고 물어 보신거죠.

그래서 제가 나 사실 남자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어요. 3초간 정적 후에 엄마는 거실에서 울고 아빠는 욕실에서 울고 저는 방에서 울고 그러다가 아빠가 다 불러 모았어요. 커밍아웃 이후에 부모님에게 맞는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걱정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아직은 너가 혼란이 있는 시기인 것 같다. 군대 갔다오고 나서도 그런 성향이 있으면 그때는 인정을 해주겠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저희 집안이 천주교여서 제가 신부 준비를 8년을 했어요. 엄마는 “신부 된다는 놈이 게이라고 한다”고 우셨어요. 그러다 일주일 정도 말을 안 했는데 대학 초에 엄마가 외식을 하자고 해서 카레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엄마가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너는 결혼 안 할 거지? 하시길래 나는 안 할거야. 했는데 엄마가 너 고등학교때 게이라고 한거 기억하지? 아직도 남자 좋아해? 하셔서 “아직도 좋아 할 것 같아요? 아직도 좋아하면 받아줄거예요?” 했더니 “너가 고칠 수가 없는건데 어떻게 하냐”고 하시더라구요. 쿨하게 받아주셨어요. 엄마랑 같이 남자 이야기도 많이 하고 요즘에 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인정을 해줬다는 걸 깨닫게 됐을 때 아, 인정을 받는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해서 페이스북에 자랑도 하고 그랬어요.

 

나미: 그 사이가 몇년 걸린 거예요?

 

김글로리: 3년 정도 걸린거죠.

 

하늘: 저도 카톨릭 신자여서 어머니를 꼭 뵙고 싶어요.

 

지인: 어머니가 고칠 수 없는 건데라고 하셨다고 했는데, 그럼 그 사이에 많이 알아보신 것 같아요.

 

김글로리: 그런 것 같아요. 엄마에게 제일 크게 감동 받았던 건 너가 게이여서 받아 주는 게 아니라 너가 게이이든 아니든 내 아들이어서 받아주는 거라고, 앞으로도 아들 노릇 잘 해 달라고 하시는 말 듣고 감동 받았어요.

 

어나더: 그럼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지?

 

김글로리: 자신을 믿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부모님이 받아 들여 주지 않는다고 너무 절망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나미: 주변에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접하신 적은 있으신지.

 

김글로리: 친구들 중에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커밍아웃은 안 해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이성애자인 척 하고 있었는데 개신교인 친구 중 한 명이 따로 밥을 먹자고 해서 왜 밥을 먹자고 물었더니 너 아직도 성소수자 지지 하냐고, 그런 건 옳지 않다고 내가 너의 그런 정신을 바로 잡겠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는 차단을 했어요.

 

샤넬: 그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김글로리: 의아함, 분노. 저도 제가 성소수자가 아니었다면 저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쉽게 평가하진 않을 것 같아요.

 

어나더: 앞으로는 어떻게 사실 생각이신지.

 

김글로리: 게이들 사이에서 ‘일틱’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근데 저는 그런게 싫어요. 제 개인적인 바람으론 군대 갔다 와서 안정이 좀 되면 드랙도 해보고 싶어요. 활동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나미: 동성결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글로리: 저는 결혼에 대해서 딱히 생각은 안해봤는데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할 것 같아요.

 

나미: 우리나라에선 현실이 결혼은 못하잖아요.

 

김글로리: 저는 같이 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나미: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글로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나미: 우리 애가 트랜스여서 동성혼은 조금 먼 고민이에요. 트랜스에 대해서도 제 지식이 많이 부족한 단계여서. 우리 애 상태가 보통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딱 여자다, 남자다,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그 중간에 있는 사람도 있거든요. 동성애에 대해서는 밖에서 많이 이야기가 되니까. 제 친구도 물어 보더라고요. 우리 애가 이렇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 친구는 교육계에 있어서 오픈 마인드인데 그거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타고나는 거라서 어떻게 할 수 없다. 하는데 동성결혼을 허용 해야 한다고 보냐고 친구가 물어 보는데 제가 거기까지 고민을 많이 안 해 봐서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대답 하고 말았어요. 그 후로 생각을 해보니까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나더: 종교 이야기를 하다보니 신다애님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신다애: 일단 가족을 먼저 소개를 할게요. 가족은 우울증, 엄마는 조울증, 오빠는 정신병이 있어요. 그 상황에서 종교 하나로 뭉치는 집안이에요. 부모님 모두 독실하셔서 저도 어릴때부터 교회에 다니게 된거죠. 저는 캐나다에서 왔는데 한국에 와서 간 학교가 미션스쿨 국제학교인데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니까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나고 학교에서 너 퇴학 당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전부터 학교가 너무 싫어서 자퇴하려고 했는데 아, 여긴 정말 아니구나 해서 자퇴하고 한국학교로 갔어요. 고3때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갔는데 그 당시에 성소수자와 종교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활동은 안하다가 작년에 대학에 입학 했는데 보수 신학 대학교여서 좌절을 많이 했어요. 그때 까지 만 해도 학교의 상황을 잘 몰라서 혼자서 무지개 뱃지 달고 다니고 그랬어요. 2학기 때 저희 학교 내에 있는 성소수자 모임 중에 한 2년 동안 활동을 안하고 있던 모임이 있는데 그 담당자와 만나서 모임을 다시 일으켰어요. 이번 학기만 해도 반 동성애 콘서트가 열렸는데 교내에서 호응도 많이 받고, 저는 대학 1학년인 작년에 아빠한테 교회를 옮기고 싶다, 그 당시에 사회학 비스무리 한 걸 하고 있었는데 난 교회를 옮기고 싶다고 아빠한테 말했는데 아빠가 왜 그러냐고 해서 난 교회가 성소수자 배척하고 그런 것도 싫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아빠가 에전부터 너 여자 좋아하냐, 그런 말을 했었는데 그런 이야기 하면서 다 터진 거에요. 근데 아버지가 우울증이 있으셔서 더 심각 해 지시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의지할 곳이 부모모임이어서 부모모임에 다짜고짜 연락했죠

 

샤넬: 그때 느낌이 어떠셨는지.

 

신다애: 후련했죠. 근데 그 후로 저는 다시 숨고. 아빠는 솔직 해지라고 하시는데 엄마가 또 아프시고. 그 이틀 동안 아빠가 원래 되게 일찍 주무시는 분인데 저랑 계속 이야기 하려고 하시고. 아빠도 우울증이 있으셔서 엄마에게도 말하고 싶다고 하셔서. 엄마는 지지한다고 말하시고 저는 그런 식으로 덮어두는 식으로 끝냈어요. 저는 원래 종교와 성소수자를 연결할 수 있는 운동을 하려고 해서 차세기연에도 활동하기 시작했고 오늘 여기까지 나오게 됐어요.

 

어나더: 다애님은 최근에 여러 모임에서 활동을 시작하신 걸로 아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신다애: 차세기연에서 얻는 힘은 별로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워낙 작은 단체이다보니까. 지금 겪는 일들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크죠.

 

김글로리: 저희 아버지도 조울증이신데 들으면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어나더: 요즘엔 자신감을 많이 회복하고 계신지?

 

신다애: 잘 못하고 있죠. 아무래도 학교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으니까.

 

어나더: 다음으로 용님과 제이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용: 저는 저번에 한번 서강대에서 했을 때 왔었어요. 그때도 친구를 데리고 왔었는데 걔가 부모님이 알게 되면서 많이 힘들어하던 애였어요. 근데 걔가 울고 그래서 괜찮은 거 같다 싶어서 오늘도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이야기 들으면서 느낀게 저는 성소수자로 살면서 딱히 힘 들었던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와는 별로 친하지 않고. 여동생은 개방 적인 편이긴 한데 딱히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없고. 주위에서도 결혼은 언제하니 여자친구는 없니 이런 질문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적어서. 오늘은 그냥 이야기를 들으러 왔습니다.

 

제이: 저는 궁금하기도 했고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왔는데, 다른 분들 이야기 듣다보니 별로 저는 별로 힘든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지인: 주변 친구들에겐 이야기 했어요?

 

용: 고등학교 친구 두명에겐 했어요. 제가 23살에 연애를 처음 했는데 나이가 좀 많은 분이랑 연애 했어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누군지 이야기를 안하니까 친구들이 궁금해하더라구요. 서른 두살이라고 했더니 나이가 꽤 있네? 하길래 아 형이다 했더니 자기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덜하다고. 애가 딸린 여자인지 임신을 한거냐 그런 추측을 하다가.

 

어나더: 그럼 가나비님은 어떤 사연이 있으신지

 

가나비: 1년 전에 그냥 제 생각에서 제가 남자를 좋아 하기 시작 한 건 지금이 스물 한 살인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부터 조금씩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흔히 말하는 벽장에서 나온 건 1년 밖에 안 됐어요. 그 전까지는 혼자서 만 생각하고 카페를 가입 한다거나 그런 걸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하게 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는 형이 있었는데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되게 많은 형이었어요. 그 형은 제가 이쪽 인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1년 전에 행성인을 소개 시켜 주면서 이 단체에서 프로그램을 하는데 너가 신청을 해서 참가를 해봐라. 그래서 처음으로 나온게 행성인이었어요. 그 전까지 마음속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받아들인지는 얼마 안 됐어요. 저희 집안도 기독교이고 그래서 항상 마음 속에서 성경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하는데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내가 바로 된 사람인가? 하는 갈등이 많았어요. 제가 얘기를 안하다가 작년에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형이랑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하게 됐는데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제가 슬펐던 건 어머니가 저도 현재 우울증이 있어서 상담 받으면서 약 먹고 있고 어머니도 많이 안 좋으신데 이걸 이야기를 하니까 어머니가 “내가 뭐를 잘못했냐”하시면서 자기가 태교를 잘못해서 너가 이렇게 된건지, 내가 뭐를 잘못 했냐는 식으로 자신을 자책 하면서 깎아 내리고, 아버지한테도 얼핏 이야기를 하셨어요. 아들이 여자가 되려고 한다고. 아버지도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꺼내긴 하셨는데 아버지는 정확하게 인지를 못하시는 것 같고, 형이랑 어머니가 저에게 일반적인 상식들, 에이즈나 종교적 인 것 그런 걸 이야기하시면서 계속 자책을 하시더라고요. 엄마가 저를 뱃속에 가졌을 때 계속 딸을 갖고 싶어했는데 그래서 그런건지. 내가 진짜 태교를 잘못해서 그런건 아닌지. 이걸 바꿀 수는 없냐는 식으로.

 

어나더: 전형적으로 부모님들이 보이는 반응인 것 같아요.

 

라라: 네 전형적으로 겪는 과정이죠.

 

모리: 그런 과정을 겪는 부모님에게 부모님 잘못이 아니라고 명확히 말해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뽀미: 제가 이상한지 모르겠는데 저는 죄책감은 별로 느끼지 못했어요. 내가 이성이랑 살아 봤는데 그렇게 많이 행복하진 않았어요. 여자랑 살아도 괜찮다. 근데 남자랑 살겠다고 데려온다면 아주 환영해줄게, 이런 건 있어요. 부모님에게 계속해서 내가 행복 한 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거 라고 계속 말을 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부모님이 죄책감을 느끼는 걸 보면 나도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스스로 자책을 너무 많이 할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나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나비: 요즘엔 형과 엄마에게 이것저것 유용한 정보를 많이 소개해주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수용의 폭이 많이 넓어진 것 같아요. 앞으로는 인권단체에서 활동도 하려고 하고 있어요.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세상.

 

( 휴식 )

 

영필: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윽박지르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등산도 데려가고 그랬으면,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그건 아닌가 봐요. 아들을 데리고 온천을 갔는데 죽어도 안 들어가는 거예요. 어렸을 때. 이상하게 만 생각했고 뭔지는 몰랐어요. 애가 여성적이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멋을 내고 화장 하고. 그런 건 좋은데 자신감있게 당당하게 행복하게 하면 좋겠어요. 가족한테도 오고 소통도 하고. 전화도 잘 안받고 하니까 속이 상하는 거예요. 작년에 큰 사건이 있었는데, 될수록 자신감 있게 . 전화 올 때는 돈 필요 할 때만, 여행 간다고 전화 오더라고요. 사진도 찍고 보내고 그렇게 자신감 있게 살면 좋겠어요.

 

어나더: 언제 처음 자녀 분이 성소수자 이신 걸 아신거에요?

 

영필: 서울에 와서 남자친구 사귀면서 그 때 알았죠. 그 전 까지는 몰랐죠. 이해도 못했고. 그러면서 충격을 받았죠. 안지는 한참 되었어요.  3년을 그 친구랑 살면서 갈등이 있었는지 아이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경찰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그 친구랑 못 헤어져서 또 같이 살다가. 그때 충격을 받아서 지금은 군대 문제도 해결됐고, 군대는 제가 보기에도 아이가 적응을  못할 것 같아서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근데 이 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군대 문제는 해결이 되고 아이가 하루 빨리 밝아셔서 이런 성소수자 모임 같은 데에도 많이 오면 좋겠어요.

 

지인: 저번에 자녀 분이 한번 정기모임에 찾아온 적이 있어요.

 

영필: 서울 가서 헤어져 살면서 많이 못 만났어요. 얘기도 많이 못하고.

 

어나더: 지난 3년동안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영필: 안쓰럽지만 주변에 얘기를 못하고 있어요. 제가 기독교인인데 목사님한테도 얘기 못하고. 작년 사건, 목사님한테 기도 해 달라고 상담을 받았는데, 별로 달가워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고민하고 기도하고, 그런 고민들을 털어놓으니까 이해를 하겠더라고요. 제 아이가 성소수자라고 해서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나더: 단번에 받아 들이시는 건 어려운거 같아요. 그러면 지금은 극복을 하셨나요?

 

영필: 완전히 극복한 건 아니지만 기독교 적인 입장에서 한번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라라: 버리면 되지.

 

영필: 그건 아니고. 인천에 이사가서 교회를 별로 못갔어요.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될거 같아요. 별아도 그렇고, 저는 아직도 아들이라고 하는데, 아이랑 같이 교회 가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어요.

 

지인: 지지하는 교회도 있으니까 교회를 바꾸시는 건.

 

라라: 거리가 멀어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최근에 섬돌향린교회에 등록을 하기는 했어요. 저는 우리 남편도 신앙 안에서 당당해지면 좋겠는 게, 만약 성경에 써져 있는 게 진리라고 얘기하고 무기로 삼아서 우리를 공격하고 있고 사회적인 보편적인 혜택에서 배제 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배운 성경은 그래요. 정죄하지 말고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그래요. 신약 복음서마다 다 써있어요. 너희 판단 자체로 죄라고 했는데, 동성애를 죄라고 하고 혐오하고 있는데, 성경은 너희는 판단도 하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라고만 돼있지, 너는 정죄할 권리도 없다. 심판은 하느님만 하시는 거다. 성경에 죄라고 써있어도, 판단하고 정죄하는 그들의 죄가 더 큰 죄. 하느님은 판단할 자격을 주시지 않았다. 똑같이 동등한 죄인이라고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한탄하고, 인터뷰를 나간 뒤에 2~3일 간 너무 힘이 들었어요. 댓글을 통해서 만나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호모포비아들을 만나고 공격 받고 그랬는데 그게 너무 제게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하늘: 작년에도 부모님 몇 분끼리 한겨레에서 인터뷰 했는데 악성 댓글이 800개 정도 달린 걸 보았어요. 더군다나 그때 인터뷰 때 찍은 사진도 표정이 안 좋게 나왔는데 그 사진에 대한 댓글이 얼마나 자식이 속을 썩히면 표정이 저렇게 안 좋은거다. 라고 달려서 이번에는 화기애애하게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욕, 저래도 욕. 욕을 먹고 내비둘까 하다가 에너지 너무 써서 뒷감당 힘들더라고요.  다음 달에 가이드북도 나오는데, 그 책에 나오는 지지하는 사람들 짧은 문구들을 가지고, 맞대응을 하기도 했는데 한도 끝도 없더라고요. 법륜스님, 대주교님 말씀, 성소수자 모욕 하는 건 신을 모욕 하는 거라고 댓글을 다니까 자기도 기독교인인데 혐오하는 교회에서 살았는데 죄송하다 미안하다. 여러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더라고요. 또 어떤 사람은 어머님 아버님 같은 느낌으로 이 글을 읽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님. 이렇게 써주시더라고요. 그랬더니 기독교 연구원이 온갖 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의 말씀. 성소수자는 논쟁거리가 아니라 무지에서 나오는 말이다. 250자 딱 맞춰서 썼더니 그다음부터 댓글이 없어요. 하루가 지났는데. 또 뭐가 달리겠죠. 거기에 가이드북에 들어가는 정보를. 그래서 이렇게 홍보를 해야겠구나. 하나하나 들어가는 문구를 올리면서 홍보를 해야겠다. 누가 거기다 욕을 해도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반박을 안하고 옳은 정보만 넣어주면 되니까. 그러니까 정보를 알아야 돼요. 우리가 아팠잖아요. 고통스러웠지만 그거를 딛고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어나더: 앞으로 무얼 하고 싶으신지?

 

영필: 기독교인 입장에서 이해하고 할 수 있는 걸 찾아보고 싶고요. 같이 교회도 정해서 내일 가볼까 하는데. 소수자도 권리나 인권은 어디 가서 존중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물론 아빠로서는 적극 지지합니다.

 

람보: 저는 공개적으로 부모님과 자녀랑 만나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처음 이여서 신기 하기도 하고. 이야기 들으니까 사람들 마다 공통점도 있고 공감도 있고. 차이점도 듣게 되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도 하고. 그래서 부모님의 아픔 같은 건 생각 안 해 봤어요. 우리들의 문제 만 으로도 벅차니까. 저희 부모님도 아픔 같은 거 티를 잘 안 내시니까. 이런 얘기 들으니까 우리 못지 않게 힘 드셨겠구나 생각도 하게 되고. 자기가 성소수자 라는 거에 대해서 갈등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다른 분도 그랬는지 궁금해요.

 

김글로리: 저는 한달을 자책했어요.

 

람보: 요즘 힘든 거는 없고 부모님이 이해 하겠다고 했으니까 되게 희망적이고 저는 앞으로도 저 답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고민이 있긴해요. 아까 일틱 얘기하셨는데 제가 일틱한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쪽에서는 그런 걸 선호하거든요. 티가 나는 걸 기피 하는 게 있어서. 그런데 좀 갈등이 돼요. 나는 나 답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가 없어요. 사람들이 원하는 게 아니니까 나를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 그런 게 갈등. 힘들다면 힘들어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살아 가보려고요.

 

지인: 취향이 다 다르지 않아요?

 

람보: 그렇긴 해요. 지금까지는 제가 하고 싶은대로 살았어요. 그래서 사람을 못 만났나. 가장 원하는 건 나답게 살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없었고 그게 제일 큰 바람이에요.

 

어나더: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모두의 큰 고민인 것 같아요. 그런데 결국에는 , 항상 부모모임 에서도 이야기가 항상 나오는데 본인이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람보: 백 퍼센트 만족이 없는 거 같아요.. 어느 정도는 포기 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저는 저 답게 사는 거에 만족하고 살려고요.

 

뽀미: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 일틱 하다는걸 좋아하는 거예요?

 

어나더: 많이 선호들 하죠. 끼순이 혐오, 그런 건 아직도 커뮤니티 안에서 논란이 많아요. 어쨋든 혐오의 한 부분이니까. 그런데 근절 되야지 생각 하면서도 일틱한 사람 찾고 있고.

 

뽀미: 람보씨는 일틱해보이지 않아요?

 

람보: 오늘은 좀 자제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더 저 하고 싶은대로. 그런데 분위기상 그럴 때가 있더라고요. 오늘도 처음이고 하니까.  저는 제 이런 부분 자체가 좋아요. 그래서 가끔 표출을 하고 그래요.

 

지인: 종교가 카톨릭.  지지하는 종교 찾거나 하지는 ?

 

람보: 종교적인 것도 갈등이 있고 했는데, 그냥 나대로 살고 그랬어요. 서울 와서 1년 동안 종교 떠나서 하고 싶은 대로 살았거든요. 성당도 안 나가고 사람도 마음 편하게 만나고. 그러다가 그래도 저한테는 종교가 버팀목이어서. 의지 할 수 있다는 게 힘이 되는 거 같아요. 종교가 이쪽을 반대 한다고 해서 떠나고 싶지는 않아요. 아까 영필  님이 말씀 하셨던 것처럼 종교안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어요.

 

하늘: 얼마전에 신부님을 찾아가서 미사를 했는데, 성소수자 당사자가 무슨 죄가 있어서 영성체를 못하게 하느냐, 나는 엄만데, 당당하게 영성체 하는데 나를 이해 시켜보시라 했더니 신부님이 아무 말씀 못하시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어머님들이 하고 있다고. 죄송 하다고. 부모모임을 다 알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나미: 여기 오신 분들 보면 동성애자 분이 많으신데, 트랜스쪽하고 동성애쪽하고 근본적으로 시작이 달라요. 동성애 쪽 관련 분들이 트랜스쪽 이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친구가 있다거나 안다거나 거기에 대해서 생각이 어떻다던지.

 

모리: 저는 출발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보통 생물학적으로 바라보는데,  우리가 여기 모인 게 성소수자로서 차별 받고 산다는 게 다 큰 거 같아요. 그런데 그 차별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나 다 똑같아요. 자기가 싫어 하는 걸 배척하고. 그래서 성소수자 인권에 있는 사람들은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요. 다만. 동성애자들 중에 트랜스젠더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 안가지려 그러고. 그런데 사실 트랜스젠더도 마찬가지에요. 트랜스젠더 중에도 게이나 레즈비언이 있어요. 트랜스젠더 중에도 게이나 레즈비언을 배척하고 그런 게 있거든요.  저는 구분 지어서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이해도는 물론 다르죠.

 

어나더: 주변에서 그런 얘기 들은적?

 

나미: 아직 주변에 얘기를 많이 안했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힘든일이 생기지 안을까 걱정이 돼요,

 

어나더: 스톤님은 어떤 계기로?

 

스톤: 그냥 막연히 오고 싶어서. 그런데 사실 막연히가 이유가 있는거잖아요. 저는 이전까지 부모님께 커밍아웃 해 보고 싶다는 문장이 떠오른 적이 없어요. 부모님이랑 마찰도 없었고, 문제로 얽혀 있지도 않고 그래서 갈 길 가야겠다 생각 했는데, 웃긴 게 자꾸 부모라는 거에 관심이 가고. 얘기 듣다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집에  투영해서 생각해고 있더라고요. 내안의 부모님이랑 얘기하고 싸우고 있고. 그래서 몇번더 나와야겠다는 생각. 저 스스로도 정리가 덜 된것 같고. 못된 약간 마음. 부모님도 받아 들이는 게 힘들 거라고 하셨는데. 저는 우리 부모님이 그러면 화가 날 거 같아요. 저는 집에서 부모님한테 힘든 일을 얘기 한 적도 없고 했는데, 제가 커밍아웃 하고 그러면 그 힘든 걸 제가 또 받아내야 하고. 부모님한테 계속 화를 가지고 있다는게 내가 바라고 있었구나 생각하게 됐고. 페미니즘공부하면서 가부장제 이런거 다 해체 해 버려 하면서도,  한쪽에선 긴밀한 애정을 강요하고 한편 아예 가족 밖으로

뛰쳐 나오라고 그러기도 하고. 나는 부모랑 같은 피가 흘러서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저 사람들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간단한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도 내려놓게 되는 거 같고. 쉽지 않겠지만. 그래서 되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지인: 부모 힘들었던 거에 대해서 달래 줄 필요는 없으니까 부모가 그 단계를 거치니까 기다려 주면 되는.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 갖지 말고. 부모가 젤 힘든 첫번 째 이유는, 우리 애가 힘들게 살 까봐. 그래서 애도 행복 할 수 있어 하면 안 힘든 거 에요. 너는 문제가 아니야 사회가 문제있어 사회를 바꿔야돼 이렇게 되더라고요. 댓글도 누가 욕을 하면 제가 힘든 게 아니라 우리 애가 볼 까봐 힘든 거에요.

 

하늘: 어떤 40대 동성애자 분이 이거 하라고 하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면 저거 하고 다 하면 엄마가 지쳐서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 화를 안냈대요. 하라는거 다 해보세요 이런 웃기는 소리도 하더라고요.

 

뽀미: 나미님이 아까 말씀이 조금 마음에 걸려서 한 말씀 드리는데요. 저는 여기 와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트랜스젠더 부모님은 차라리 게이아들을 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런가 하고 돌아갔는데, 지금 시작이 다르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까, 사실은 시작이 다른 것도 아니고, 모두 다른 게 아닌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동성애자들보다 더 힘든 단계를 거쳐야 되니까 본인들이 오히려 저들은 우리랑 단계랑 시작이 다르고, 소수자 중의 소수자 이기 때문에 시각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나미님이 먼저 지레짐작해서.  그러신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미: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문득 동성애자랑 트랜스젠더는 다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트랜스의 경우에는 성별정체성의 문제에서 시작이 되고요. 동성애자는 지향의 문제에서 시작이 되는거라고 생각이 되고요.

 

뽀미: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본은 나답게 살자, 어떻게든 나답게 사는게 옳은거고 이걸 지지하는 거거든요. 희은씨 볼 때 마다 변화 하는 게 보여서 칭찬하고 당당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이 좋거든요. 이모습 그대로를 지지하고 나답게 살기를, 당당하게 살기를 우리가 이야기하고 우리끼리 지지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소수자 모임들이 연대를 굳건히 해서, 소수자면 숫자가 작은데 분산 되어 서 힘이 나눠 지는 게 너무 안타까운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든 결집을 해서 영향력이 컸으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중의 하나로, 동성애 트랜스 시작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이건 조금 너무 어려운길이 아닐까 하는 아쉬운 마음에. 그저 우리는 나로서 나답게 사는게 좋아서 모임도 하게 되고 그런거니까요.

 

나미: 그 말씀을 몰라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고, 제가 트랜스 자녀를 몇개월 같이 보고 하니까, 저의 초점이 트랜스 쪽에서 생기는 문제에만 집중하게 되지, 동성애에 대해서 더 알아보거나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동성애 입장에서도 이게 뭔가 생각하고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겠구나.

 

뽀미: 내코가 석자니까 그럴수도 있어요. 그래도 소수자의 인권이 비 성소수자의 인권과 같고, 편견에 마음 다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생각을 나누고 싶었어요.

 

창현: 오늘 종교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처음에 절을 다녔지만 어머니가 교회를 다녀서 어머니 따라서 교회를 갔어요.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개종 이라기 보다 원래 믿던 종교인 불교로 돌아 갔어요. 교회 다닐 때 동성애에 대한 안 좋은 얘기 많이 들었는데. 지금도 종교 얘기 들으면 갈등이 많이 돼요. 어렸을 때 의지 할 곳이 많이 없었거든요. 어머니 감리교. 얘기를 해도 세대 차이도 있고 해서 답답한데. 종교라는 것도 사람에게 독이 되는 종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교회 다닐 때 좋았지만, 신이 라기 보다 신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변질이 됐다고 생각 하거든요. 지금은 다행히 종교가 달라서 싸우거나 하지는 않는데, 지금 부모모임에 참가 하면서 정보도 얻고 저만의 준비도 하고. 저를 많이 알아야 어머니하고 얘기할때 이야기할거리가 많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서 어머니 손잡고 오는 기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어나더: 마무리 할 시간. 소감.

 

신다애: 좋았어요 라는 말밖에 못하겠는데. 반가웠고 좋았고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김글로리: 처음 왔을 때는 작년에. 이런 모임이 있었구나 생각을 했는데, 다시 오게 되니까 오기를 잘했구나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감사 합니다.

 

가나비: 저도 솔직히 성소수자 부모님들이나 여러 분들이랑 이야기 해 본 적이 없어서 오늘 이렇게 있으면 공감대. 이런 느낌 가질 수 도, 저런 느낌 가질 수 도 이런 생각 하게 되면서 굉장히 새로웠어요. 감사합니다.

 

영필: 되게 똘똘한 친구들 많이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나미: 젊은 분도 계시고 그 전에는 얼마나 괴로울까 힘들까 데이트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 전에는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횟수를 더 하고 오는 분들 보니까 앞으로 잘 사실 꺼 같아요. 정말 건전하고 자기를 자 세우고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희은: 오늘 이야기를 많이 못 했어요.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노래가,  시를 부활 가수가 만든 노래인데,  각자가 서로가 다름이 있지만 현재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고 항상 눈과 귀를 열고 잘 들어주는 게, 부모모임 서강대에서 맨 처음 갔었고 인터넷 검색 해 보니까 동성애자인권연대 그 당시 가입 했었고. 처음 모임 나간 데가 여성모임. 행성인 안에 여성모임 이다 보니까 이성애자는 없고 레즈비언만 모여 있던 거에요. 내가 동성애에 대해 편견이 없었구나. 느꼈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그들도 만나보고 하면서 사람을 만나보지 않고 주변 사람 이야기 듣고 상대방 평가하고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 모든 부모님이 똑같더라고요. 내 아이가 밖에서 손가락 질 받고 사는 모습 볼 수 없고, 남들처럼 떳떳하게 사는 거 보고 싶은데, 엄마랑 어제 이야기 나눴는데, 엄마는 받아 들이려고 노력 했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 나오는 거에요.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중요한 건 겉 모습보다 내면의 속이 중요한 거 같아요. 아무튼 저는 여기 올 때 마다 감동을 받아요.

 

람보: 오늘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속 시원했고요.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요. 모두가 힘써서 그렇게 만들어 갑시다.

 

스톤: 질문 하나만. 부모님한테 커밍아웃 그런 생각을 못 해 보 게 된 게  빚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존재 자체를 죄인 같이 짐 덩어리 같이 느껴지게 자라 와서 이런 거 얘기 하는 거 자체가 빚 진다 라고 생각해요. 저 사람은 또 합리화 하지 않을까. 부모님들은 그걸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궁금해요. 왜 나한테 이렇게 바라지 하는 생각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지인: 초반에 그런 생각 할 수 있어요 생각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왜 이래서 힘들게 만드느냐. 자식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서 그래요. 말을 해줘야해요.

 

뽀미: 부모님에 따라서 달라요. 어느 아버진 자기가 죽을 때 까지 내 아들이 동성애자 라는 걸 몰랐다면 자기는 죽어서 라도 다시 귀신이 돼서 돌아와서, 그럴 거 같다고. 나한테 왜 이야기 안했냐고 묻ㄱ고싶다고 하신분도 계세요. 또는 자기한테 내내 이야기 안하는 자체는 자기를 배신하는 거다 고 표현하는 부모님도 계세요. 그러니까 일단 꺼내놓고 나면 고통일수잇지만 시간이 지나면 만약에 해결이 어떻게든 된다면,   판도라의 상자인데, 좋게가면 좋은건데 안좋게가면 어떻게될까가 고민인건데, 내내 숨겼기 때문에 너는 나를 배신했어. 그 중요한사실을 말하지 않았단말이야. 그러면 나랑 그동안 했던 소통은 뭐야. 그러면 그때는 뭐라고 할래요?

 

스톤: 싸울거에요

 

뽀미: 그럼 싸워요.그때 싸우던, 지금싸우던 그건 본인의 선택이겠죠.

 

어나더: 저는 싸우다가 집을 나온상태.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각자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각자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나면 싸우기만 하니까.

 

라라: 오늘 돌아가면서 이야기 하는 중에 그런 애기 커밍아웃 후에 밝아지고 행복했다. 내가 나 일 수 있는 세상이 되어 가는 거 같아서 좋았다. 누군가로 부터 나의 정체성을 인정 받는 건 행복이잖아요. 그래서 말씀 하시는 게 옳다고 봐요.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것도 사회로부터 인정 받고자 하는 거 잖아요. 우리가 행복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사실은 부모도 알 권리가 있어요. 자식에 대해서.

 

뽀미: 타이밍의 문제인 것 같아요.

 

라라: 타이밍을 서로 잘 고민하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