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1.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자회견 발언문 (오은지)
안녕하세요? 트랜스젠더인 아이를 둔 엄마, 오은지입니다.
저는 오늘 많은 분들께 제 아이와 같은 트랜스젠더들이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말씀드리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많은 분들이 내 주위에서는 성소수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도 아이가 커밍아웃하기 전에는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용기 있게 커밍아웃해 준 아이 덕분에, 우리 사회의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많은 성소수자들이 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할까요?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개개인들이 성소수자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심지어 보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함부로 할 정도로 혐오와 차별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쉽게 던지는 혐오의 말과 행동에 많은 성소수자들은 위축되고 절망하며 상처받습니다. 또한 가족과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 슬픔과 절망은 더 깊어집니다. 누군가는 끝내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입니다. 지금 저희 가족 안에서 트랜스젠더인 아이가 함께 밥 먹고 함께 웃으며 살아가고 있듯이, 지금 당신의 곁에도 트랜스젠더인 누군가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교실과 사무실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서도 우리는 트랜스젠더를 만났을지 모릅니다. 이들이 자신을 숨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치와 법 제도가 성소수자 인권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동료 시민들이 성소수자를 평범한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성소수자의 가족들이 당사자를 지지하고 더욱 사랑할 때 그런 날은 더 빨리 오리라 생각합니다.
변희수 하사, 김기홍 님, 이은용 님의 소식을 들으며 저희 가족은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언론을 통해 그분들의 생전의 목소리와 모습을 보며 저와 남편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들의 삶의 빛을 누가 꺼뜨렸나요? 트랜스젠더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트랜스젠더를 보지 못하고 거부했던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했던 우리 모두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듯이, 평범한 일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이 우리 사회에 앞으로 더 많이 보이기를, 오늘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모든 분야의 분들이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오은지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