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성소수자 혐오 반대는 곧 모두를 위한 평등이다
-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이날만큼은 서로를 격려하며 혐오 없는 세상이 올 거라는 희망을 되새기는 날이지만-물론 오늘도 이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올 한 해 동안 뼈아픈 소식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체감합니다. 인권은 더 후퇴하고 있고 차별과 혐오는 더욱 정교하고 단단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능력주의와 불공정 담론으로 도치되고, 경쟁과 힘에 의해 그 저변을 잠식당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합니다. 게다가 전염병으로 불만이 누적되면서, 도처에는 서로를 향한 분노와 적대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공정하지 않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그 불만을 휘두르지만, 다른 누군가는 호소하고 분노할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그 휘둘러진 불만에 맞아 스러집니다. 결국 이 모두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하고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를 멈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 곳곳에서 성토되고 있음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회피하고 우리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증오선동과 혐오발화를 정치적 수사로 차용하고 이에 기대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차일피일 미루어지는 동안, 한국사회의 차별과 혐오는 더욱 철저하게 성소수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고립시키고 절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 절망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에 우리는 분노합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노동현장에서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고,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사랑하는 이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성소수자를 ‘비정상’이라고, 우리의 요구가 과도한 것이라고 괄시합니다. 그러나 그 혐오적 가치관과 언동으로 누군가의 존재를 당연스레 배제하고 생명과 존엄을 훼손하는 이 사회야말로 비정상이 아닙니까.
성소수자이면서 여성이고, 장애인이며, 노인이고, 비(非)백인이며, 학생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환자인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혐오 반대는 단지 ‘성소수자’만을 위한 게 아님을 우리는 절절히 느낍니다. 만인선언문에 열거된 정체성 하나하나가 모두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 각각의 존재들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대하는 것입니다.
이중 무엇 하나라도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존엄이 위협당한다면, 그것은 ‘평등’이 아닙니다. 성소수자 혐오 반대가 곧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 반대에 맞닿아 있음을, 나아가 모든 이들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것임을 이 사회는 분명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이를 위한 초석으로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입니다. 법적 제도적 안전망으로, 차별과 혐오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존엄이 최소한 위협당하지 않도록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기를 촉구합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하다.
우리는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외모,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우리는 요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2021년 5월 17일
성소수자부모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