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트랜스젠더 딸을 둔 엄마,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지월이라고 합니다.

 

지난 2020년 8월, 성소수자부모모임을 찾아왔던 변희수 하사가 떠오릅니다. 노회찬 정치학교에서 부모모임에 집밥으로 연대하고 싶다며 방문해주셨는데 변희수님과 함께 오셨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군의 강제전역 조치를 규탄하며 연대활동에 결합하는 정도였지만, 회원들과 함께 변희수님을 직접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같은 날 뒤이어 진행된 정기모임에도 참석하셨는데,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그녀가 참가자로 오신 어느 신부님께 먼저 다가가 짧게 대화를 주고받는 걸 봤어요. 자신도 가톨릭 신자라고, 세례명은 가브리엘이라고. 신앙에 대한 고민도 함께 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먼저 이야기했던 그녀를 보고, 한 회원은 희수님의 세례명을 가브리엘 말고 그 여성형 이름인 “가브리엘라”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대종단 추모제로 마련된 오늘의 추모제에서, 변희수 자매님의 세례명 “가브리엘라”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고민 그리고 어릴 적부터 겪어온 성별위화감으로 인한 혼란을 군인이 되고 싶다는 꿈과 목표로 해소하고자 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군을 끔찍이 사랑하고 군인으로 살기를 바랐던 그녀였습니다. 자신을 부당하게 강제전역시킨 군을 두고, 끝까지 싸워 차별 없는 군을 만들겠다는 말이 아직도 뇌리 꽂힙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안타깝고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게 세상에 맞서주는 모습이 장하고 고마웠습니다. 트랜스젠더로서 차별과 혐오를 마주하며 살아야하는 자식들의 모습에 항상 걱정과 우려를 안고 있는 우리 부모들에게, 변희수님은 큰 위로이자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해 이렇듯 의지하는 마음을 비췄던 것이 못내 죄스럽기도 했습니다. ‘되려 우리가 위로와 희망을 건넸어야 했는데, 우리가 더 적극 나서야 했는데….’ 성소수자 자식을 둔 부모로서, 한국사회의 주류 기득권층과 같은 윗세대로서 그리고 동료 시민으로서 이런 막돼먹은 세상에 살도록 일조한 데 대해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오전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부모모임은 유가족분들의 입장문을 대독했습니다. 유가족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끝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도 서로 다른 삶이 있고, 온전히 모든 걸 다 이해하고 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내 자식이 바라는 것, 하고 싶은 건 이뤄주고 싶은 것이 부모마음이기도 합니다. 변희수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살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에 모자람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어기고 잘못한 건 희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그러니 변희수는 명예로운 육군 하사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유가족분들의 이 말씀을 통해 저는 다시금 마음을 바로잡았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자식들, 성소수자들을 위해 끝까지 해보는 것임을 아로새기며 말입니다. 당장은 세상이 요원하고 역행하는 것 같을지라도, 우리가 만난 변희수님과 유가족분들의 말씀 그리고 여러분과의 지금 눈맞춤을 기억하며 끝까지 해보고자 다짐합니다.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슈룹’에서 중전인 김혜수가 트랜스여성인 계성대군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한 독백을 나누며 발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언젠간 말이다. 남과 다른 걸 품고 사는 사람도 숨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거야.”

남아 있는 우리에게 이 말을 감히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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